장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해운업계가 한계에 직면했다. 해운업계에 지난 5년은 악몽과 같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해운업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9조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생존을 위해 배와 계열사, 해외 터미널 등 돈이 되는 것은 다 팔았다. 그럼에도 이 기간 시장에서 퇴출당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해운사는 80여개에 달한다.
물론, 국내 해운업계의 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더불어 해운사들이 자초한 면도 있다. 국내 해운업계는 2003년 선가가 급등할 때 대규모로 선박을 늘렸다가 불황기에 손해를 입는 잘못된 경영판단을 내렸다. 또 선가가 비쌀 때 맺었던 선박용선 계약을 해지하고 선제적인 비용절감이나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국내 양대업체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알짜 사업과 상당수 선박들을 팔아야 했다. 두 회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눈물을 머금고 실행한 자구안 규모는 무려 8조원에 달한다. 당면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향후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할 무기들을 처분한 것이다.
문제는 경쟁력이 훼손된 국내 해운업계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형 선박으로 중무장한 중국과 유럽 등 글로벌 선사와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세계 1~3위 해운사인 머스크, MSC, CMA-CGM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1만5000~1만8000TEU급 에코십을 발주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내 해운사의 주력선은 5000~7000TEU급에 불과하다. 연료 효율에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규모부터 다르니 가격 경쟁력 역시 현저하게 떨어진다.
우리 정부가 두 손을 놓는 동안 세계 각국 정부는 자국 선사에 대규모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덴마크 정부는 머스크에 60억 달러의 차입금을 지원했다. 또 중국 정부는 세계 5위인 자국 선사 코스코에 108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2억 달러 이상의 선박해체 보조금을 지원해 노후화된 선박을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뒤늦게 위기감을 느낀 우리 정부도 해운업계 지원에 나섰지만, 업계에 온기가 돌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애초 2조원 규모로 논의했던 해운보증기금 설립은 5500억원 규모로 축소됐다. 이마저도 내년 예산으로 300억원이 배정되는 데 그쳤다.
해운업은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를 담당하는 기간산업이다. 사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해운업이 멈추는 것은 몸에 피가 돌지 않는 것과 같다. 정부는 유동성을 해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 해운업계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