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 ‘해를 품은 달’ ‘별에서 온 그대’ 등 한류돌풍의 진원지 역할을 한 외주제작사.
우리 방송계에 도입된지 벌써 강산은 두 번하고도 반이 지났지만 외주제작사의 지위나 환경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방송편성을 받기 위해 방송사의 요구에 군소리 없이 따라야 하고, 무리한 캐스팅으로 막대한 출연료를 지불하다보면 직원들 월급조차 못주고 문을 닫는 업체들이 여러 곳.
이제는 저작권 등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고 유통채널을 다변화해 진정한 독립제작사로서의 위상을 찾을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인식 변화가 필요할 때다.
#1. ‘겨울연가’‘미남이시네요’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 이들의 공통점은? 한류를 거세게 일으킨 드라마로 모두 외주제작 작품이라는 점이다. SBS ‘비밀의 문’에서부터 KBS‘가족끼리 왜이래’ 등 요즘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대부분의 드라마가 외주제작사가 만들고 있다. ‘해를 품은 달’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중국 저장미디어그룹과 함께 한중합작 드라마 ‘킬미, 힐미’ 공동제작에 나섰고 삼화프로덕션은 중국 골든유니버셜미디어와 손 잡고 고전‘봉신연의’를 소재로 한 55부작 사극을 공동으로 제작한다.
#2. “올 7월 현재 기준 지난 6년간 ‘프레지던트’‘신의’ ‘도망자’‘더뮤지컬’ 등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 외주제작 드라마에서 발생한 출연료 미지급액이 26억24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 22일에 진행된 KBS 국정감사에서 외주제작 출연료 미지급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이 24일 발표한‘2012~2013 지상파 3사 드라마 1회당 작가료 및 주연 1~3 출연료 평균금액 현황’에 따르면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3억 6400만 원으로 작가료는 2300만 원으로 전체 7%, 주연급 3인의 출연료는 7600만 원으로 21%를 차지했다.
1990년 도입된 방송외주제작 제도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독점적 수직통합구조를 완화해 방송영상산업을 활성화하고 제작 주체의 다원화를 통해 방송제작 경쟁력을 강화하며 시청자와 제작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하기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외주제작제도다. 외주제작이 시행된 지 25년을 맞았다. 과연 외주제작제도가 당초 의도했던 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일까.
“20여년간의 외주제도 시행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지상파의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 의무편성비율등 외주제작제도가 외양적으로 양적팽창을 가져왔지만 실질적으로 자생력을 갖기 보다는 지상파 방송에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최세경 전 한국콘텐츠진흥원 책임연구원의 외주제작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다.
외주제작제도는 1990년 7월 개정된 방송법에 외주정책이 포함돼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1991년 지상파 방송사 의무외주제작비율이 3%로 고시된 이후 의무외주비율은 1993년 10%, 2001년 31%, 2012년 35% 등으로 상승해 외주제작을 활성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외주제작 초창기에는 이해 당사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됐다. 외주제작이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방송산업육성과 시청자 복지를 신장시킨다는 관점에서 정부와 외주제작사들이 찬성을 했고 지상파 방송사는 제작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는 입장에서 반대를 했다.
1990~2002년 외주제작 초창기에는 외주제작제도의 의미는 크지만 당초 의도했던 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와 현업종사자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케이블, 위성방송의 활성화, 한류 등으로 외주제작 환경이 급변한 2003년 이후 드라마를 중심으로 외주제작이 더욱 활성화됐고 외주제작사 역시 양적 팽창을 가져왔다. 외주제작 초창기에 비해 2010년대에 들어 외주제작사수가 1300여개로 30배로 증가하는 등 제작역량이 강화됐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청자와 만났다. 외주제작 시장규모도 외주제작 초창기 500억원대에서 2013년 5000억원대를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물론 한류를 주도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도 외주제작사였다.
2013년 7월 출연자와 스태프의 인건비를 지급하지 못해 논란이 됐던 드라마‘신의’를 연출했던 김종학PD의 자살은 외주제작의 문제점을 공론화시켰다. 외주제작사가 수익보다는 외형위주의 경영으로 적자 도산하는 사례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외주제작사의 40% 정도가 한해 제작 프로그램이 한편이 없을 정도로 규모가 영세하고 제작능력이 낮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지상파와 외주제작사와의 제작비 및 판권문제 등 고질적인 병폐는 외주제작환경을 악화시켰다. 또한 외주제작사들이 방송편성을 받기위해 스타 작가와 연기자를 무리하게 캐스팅하면서 출연료가 치솟고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외주제작사도 늘었다.
최세경 연구원은“현재의 지상파 중심의 하청형 외주제작은 방송 콘텐츠의 제작유통을 방송 프랫폼에 종속시키고 있다. 방송사가 제작비를 지급하면 독립제작사가 제작하는 하청형식에서 벗어나 독립제작사가 기획, 제작하고 여러채널에 유통 판매까지 담당하여 저작권을 인정받는 한국형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해야 외주제작이 자리를 잡을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은“저작권과 편성비율, 제작비, 표준계약서 이행 등 외주제작의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들을 해결해야만이 1990년 도입한 외주제작제도가 명실상부한 성과를 거둘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