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삼성전자 서초사옥 입구에 고급 승용차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한 손에 낡은 서류가방을 든 채 39층으로 향한다. 수요 사장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삼성 사장단은 매주 경영 현안에 대한 논의와 함께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40분 가량의 강연을 듣는다. 사장단 회의는 고(故) 이병철 창업주 시절부터 있었지만 2000년부터 현재의 방식으로 정례화 됐다.
삼성 계열사 사장이라고 해서 모두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 사장단은 부회장(5명)을 포함해 총 61명이지만, 오너 일가 부회장·사장 3명과 미래전략실 부회장·사장 3명을 제외한 계열사 사장단은 55명이다. 이 중에서도 주력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30여명 정도만 참석이 가능하다.
삼성 사장단 강연은 오는 24일까지 네 번을 남겨두고 있어 올해 강연은 총 47회로 마무리된다. 오는 31일이 수요일이지만, 통상 12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사장단 회의가 없다.
삼성 사장단이 지난달 26일까지 들은 총 43회 강연은 경제 분야 가장 많은 29건(67%)을 차지했다. 특히 분야를 좁히면 리더십 등 경영 분야에 대해 외부의 지혜를 구하는데 많은(19건) 시간을 할애했다. 지난해 총 45회 강연 중 경제 분야가 23회(경영 13회)였던 점을 고려하면 부쩍 늘었다. 이는 삼성을 둘러싼 안팎의 위기감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수요 사장단 강연 주제는 경제 분야에 뒤를 이어 문화 7회, 정치 5회, 사회 1회 등으로 집계됐다.
삼성 사장단은 5월까지 경제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올 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던진 ‘마하경영’의 화두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난 3월엔 네 번의 수요일 모두 경제 분야를 배웠다.
하반기 들어서는 차세대 성장동력에 대한 강연이 많아졌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의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넥스트 10년을 준비하라’, 김한얼 홍익대 교수의 ‘가치혁신과 지속성장전략’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삼성 사장단이 청취한 경제 분야의 주요 강연 내용은 △변화와 혁신의 리더십(김영철 연새대 교수) △다시 전략이다(장세진 카이스트 교수) △창의성과 경제학(한순구 연세대 교수) △혁신을 디자인 하라(에린조 파슨스디자인스쿨 교수) △숫자로 경영하라(최종학 서울대 교수) 등이다.
정치, 문화 분야에 대한 강연도 있었다. 최대 시장인 중국의 정세 등 우리나라와의 관계 전망에 대해 임혜란 서울대 교수로부터 들었고, 교황과 세종대왕의 발자취를 거슬러 따라가 보기도 했다. 지난달 19일에는 박칼린 뮤지컬 감독으로부터 ‘하모니 리더십’에 대해서 들었다. 박 감독은 당시 삼성 사장단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중요성을 느끼고 장단점을 격의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수직이 아닌 수평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한 방법으로서 ‘소통’과 ‘신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에 이어 올해 사장단 강연자는 대학 교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 11월 26일 기준 총 43명의 강연자 중 30명이 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