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35)의 ‘로봇 질주’는 아름다웠다. 축구선수로서의 마지막을 앞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2일(한국시간)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호주 아시안컵 8강전에서 손흥민의 멀티골에 힘입어 2-0으로 이기며 4강에 올랐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을 맞아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 전후반 90분 동안 득점을 올리지 못하며 연장에 돌입했다. 서서히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연장 전반 손흥민의 선취골이 터졌고, 연장 종료 직전엔 8강전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나왔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볼을 잡은 차두리가 상대 수비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70m가량의 거리를 거침없이 달렸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까지 치고 들어온 차두리는 손흥민에게 완벽한 패스를 찔러줬다. 손흥민은 왼발 슈팅으로 한국팀의 승리를 매조지했다. 이날 차두리는 후반 25분 김창수를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아 연장전을 포함해 50분을 뛰었다. 차두리의 폭풍 드리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도 차두리는 폭발적인 오버래핑으로 남태희의 결승골을 배달했다. 마치 40년 전 아버지 차범근의 모습을 보는 듯한 ‘로봇 질주’였다.
해외 언론도 차두리의 활약을 격찬했다. 스코틀랜드 일간지 ‘더 스코츠맨’은 “셀틱 소속으로 43경기를 소화했던 차두리가 아시안컵 8강 연장전에서 미사일처럼 빠른 속도로 측면에서 도움을 기록했다. 차두리의 공이 바이엘 레버쿠젠의 손흥민에게 갔고 우즈베키스탄 골망을 흔들었다”고 전했다.
차두리는 이번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001년 11월 세네갈전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후 73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하며 10년 넘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마지막 선수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가 갖고 있는 힘과 스피드는 여전히 견고하다.
사실 차두리는 이미 오래전 은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해설자로 참여했다. 당시 조별리그 2차전 알제리전에서 대표팀이 2-4로 진 뒤 쉼없이 눈물을 흘리며 화제가 됐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그라운드에서 후배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A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슈틸리케 감독이 마음을 돌렸다. "차두리는 그라운드 안팎으로 꼭 필요한 선수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시안컵까지 함께 할 것이다"며 붙잡았다. 그리고 35세 노장 수비수는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한국 축구의 55년 숙원인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축구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쉼없이 뛰고있다.
한편 한국은 26일 이란-이라크 승자와 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