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면 죽는다?”…넴초프 피살로 러시아 인권탄압 실태 여실히 드러나

입력 2015-03-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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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무참히 살해되면서 러시아에 여전히 만연한 인권탄압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넴초프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밤 11시 40분께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 러시아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야권은 즉각 이번 사건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사건 소식이 알려지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저명 여성 야권 운동가 이리나 하카마다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야만스런 도발이며 극악무도한 짓이자 유사 테러”라고 비난했다. 주요 야당인 야블로코의 당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도 “최악의 범죄이며 할 말이 없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넴초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가교 역할을 해왔으며 그의 피살로 이 다리가 붕괴됐다”면서 “이는 우연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야권에서 이같이 주장하는 것은 피살된 넴초프 전 부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 운동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반정부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야권 지도자들과 함께 2008년 야권 운동단체 ‘솔리다르노스티(연대)’를 창설해 이끌어 오며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경제 실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2011년 총선 이후 유명 블로거이자 변호사 출신의 야권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 등과 선거 부정, 푸틴의 장기 집권시도 등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 경제난 등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고 2012년부터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국민자유당(RPR-PARNAS) 공동의장직도 맡아왔다.

과거에도 푸틴 대통령과 정권을 비판하던 저명 인사들은 푸틴이 집권한 1999년부터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2003년 4월 17일 자택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세르게이 유센코프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으로 당시 총선 출마 선언 직후 자택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이 죽음을 놓고는 4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2004년 7월 9일 사망한 러시아계 미국인 기자인 파울 클레브니코프도 있다. 당시 미국 포브스의 러시아어판 편집장이었던 그는 모스크바의 사무실을 나온 직후 피살됐다. 2명의 용의자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6년 10월 7일 사망한 인권 운동가 안나 폴리콥스카야는 체첸에서의 비리를 폭로한 언론인으로, 모스크바의 아파트에서 사살됐다. 몇 차례의 심리 후 2014년 6월에 5명이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살인을 지시한 배후는 특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 23일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S)의 직원으로서 푸틴을 비판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영국 런던에서 방사성 독극물 폴로늄이 든 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영국의 수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당국은 모스크바가 관여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크렘린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2009년 7월 15일 체첸의 비리를 파헤친 저명한 인권 운동가 나탈리아 에스티미로바는 체첸에서 납치된 후 사살된 채 발견됐다. 용의자는 잡히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자 사설에서 과거 의문의 죽음을 맞은 인사들과 넴초프의 죽음은 러시아의 정치적 폭력 문화가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했다. 이어 암살 사건의 범인이 이 체포되더라도 러시아 법무 당국은 범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 주목했다. 넴초프의 암살범 역시 붙잡히더라도 유죄 판결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FT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번 사건으로 러시아가 다른 서방 국가들로부터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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