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갖지 않겠다고 약속해 영국·독일 등 설득…IMF·WB도 지지 의사 밝혀
미국과 금융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서구 선진국을 유치한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
중국은 자국이 AIIB 최대 지분을 보유하더라도 거부권을 갖지 않겠다고 약속해 선진국 설득에 성공했다고 2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협상에 참가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은 유럽과의 지난 수주 간 협상에서 이런 결정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중국의 제안에 영국이 가장 먼저 호응했으며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가 그 뒤를 따랐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주요 7개국(G7)인 이들 국가가 AIIB 합류를 선언하면서 미국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미국의 지분율이 20% 미만이지만 거부권을 행사하는 관행과 대조적이다. 사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이런 거부권은 다른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IMF 개혁을 미국이 꺼리는 것도 AIIB에 동맹국들이 잇따라 합류한 이유다. 미국 의회는 중국 등 신흥국에 더 많은 투표권을 부여하는 IMF 개혁안을 아직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AIIB에 세계 주요국들이 참가하면서 IMF와 세계은행(WB)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듯 지지 의사를 밝혀 미국을 난감하게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포럼에서 “중국이 다자 국제금융기구를 설립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우리도 AIIB와 합작하기를 매우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용 WB 총재도 같은 날 성명에서 “우리는 AIIB와 어떻게 협력해 작업을 진행할지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에서 지식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투자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리췬 AIIB 임시사무국 사무국장은 “영국이 서방국 가운데 처음으로 가입을 선언하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이 잇따라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이달 말까지 신청을 받는 AIIB 창립 회원국이 35개국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리들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과 호주도 참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날 라가르드 총재와 나카오 다케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등과 잇따라 회동하며 AIIB의 매끄러운 출발에 힘을 보탰다.
이런 진전은 중국이 세계 외교무대에서 거둔 보기드문 승리라고 WSJ는 평가했다. 중국 정부의 신중하면서 조심스런 접근이 이런 성공을 가능케 했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중국은 거부권 이외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투명성과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진리췬 사무국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은퇴한 WB 직원들을 영입해 신뢰를 쌓았다고 WSJ는 설명했다. 그가 영입한 인재 가운데는 WB 변호사를 역임한 나탈리 리히텐슈타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