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이임용 선대회장과 결혼한 후 1950년 10월 25일 이 선대회장과 함께 태광산업을 공동으로 창업했다. 창업 후에는 태광산업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기울였다.
육영사업 및 사회공헌활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진 고인은 1977년 6월 일주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인 1978년 3월 서울 서초구에 세화여자중·고등학교를 개교했다. 고인은 당시 최고 수준의 사학을 만들겠다며 학교 시설에 사재를 아끼지 않았다. 최초로 중앙난방 방식을 도입했고, 교실에는 에어컨을 설치했으며, 천장과 내·외벽 등은 최고급 자재로 마감했고, 음악실에는 방음장치까지 만들었다.
고인은 실 한 올도 아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도 인재양성 등 사회공헌활동에는 적극적으로 기부했다. “나라가 잘 되려면 교육이 잘 돼야 하고, 교육이 잘 이뤄지려면 어머니가 될 여자가 먼저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게 고인의 철학이었다.
고인은 이 선대회장과 함께 1990년 일주학술문화재단을 만들어 국내 및 해외 학·석·박사 장학생 지원 등 각종 장학·학술 사업을 진행했다. 또 2010년에는 문화예술에 특화된 지원을 하기 위해 선화예술문화재단을 설립해 신진 작가 지원과 문화예술 공간 나눔 활동 등을 했다.
재단 관계자는 “고인은 항상 ‘숲의 열매는 함께 나눠야 한다’는 정신을 강조했다”며 “생전에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고인의 뜻에 맞춰 장례절차는 간소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앞서 횡령·배임 혐의로 2011년 이 전 회장과 함께 기소돼 이듬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10억 원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이후 관상동맥 협착증 등 숙환으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병원 생활을 해왔다.
유족은 이호진 전 태광 회장 등 1남 3녀.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객은 9일 오후부터 문상할 수 있다. 장례는 고인의 뜻을 기려 학교법인 일주학원 일주학술 문화재단·선화예술문화재단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5월 10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경북 포항시 청하면 서정리 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