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부재와 핵심인 모바일 사업의 부진 등으로 고전하는 삼성전자를 둘러싸고 사업모델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시점이 온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년 전 발표한 연매출 4000억 달러로 확대 등 10개년 계획 목표를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졌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JS)은 12일(현지시간)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최근 회사 경영진 사이에서 당시의 목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어서 이같은 질문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주의를 발판으로 회사를 키웠고, 삼성전자는 ‘비전 2020’으로 회장의 비전을 이어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5월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데다 설상가상 새로 내놓은 스마트폰 ‘갤럭시S’의 매출이 예상을 크게 밑돌면서 삼성을 둘러싼 위기론이 부상했다.
삼성은 작년 스마트폰 판매 대수에서 미국의 애플을 앞지른 유일한 기업이지만 핵심인 모바일 단말기 부문은 작년 3분기(7~9월) 영업이익률이 7%로 전년 동기의 18%에서 반토막이 났다. 이 부문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42% 감소했다.
올해에도 이 여파는 이어졌다. 모바일 사업의 부진 영향으로 올 1분기 영업이익은 39% 감소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애플은 같은 기간에 영업이익이 33% 증가했다. 삼성 모바일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1%로 회복했지만 애플은 같은 기간에 41%의 이익률을 달성했다.
WSJ는 갤럭시 시리즈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이 회장의 ‘규모의 전략’이 새로운 시대에도 적합한 지 회사 내외에서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수십 년간 규모의 확대를 통해 TV와 반도체 등 대규모 시장에 진입, 중저가격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을 전개해왔다. 스마트폰에서도 같은 수법을 적용해 2013년에는 모바일 부문이 전사 영업이익의 68%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삼성은 저가를 앞세운 중국과 인도의 신흥기업들과의 경쟁에 휘말려있다. 고가의 제품에서는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을 무기로 한 애플과 맞붙어 애를 먹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른 사업은 이미 포화상태여서 마진율이 낮다는 지적이다. 가전 부문은 거액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4%에 그쳤다. 그나마 반도체 부문은 작년 영업이익률이 35%로 2013년의 19%에서 대폭 늘었다.
WSJ는 현재 삼성을 포함한 한국 기업이 놓인 상황이 과거 일본 전자업계를 방불케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낸 보고서에서 수출 부문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1990년대 초반과 같은 난국에 직면해 있다”며 그 요인으로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꼽았다.
김한얼 홍익대학교 교수도 WSJ와의 인터뷰에서 “삼성 등 한국 기업의 사업 모델은 당시 일본 기업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삼성이 스마트폰의 과제에 대응하면서 더 나은 제품 개발에 그치지 말고 사업모델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지 여부의 검토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WSJ는 결국 이같은 결단이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어깨에 달려있다고 전했다. 일본 게이오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이 부회장은 삼성 그룹 및 삼성전자에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부친과는 견해가 다르다. 그는 공식적으로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전략을 밝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의 규모 확대보다는 수익이 나는 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