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전 세계가 난리입니다. 글로벌 증시는 29일(현지시간) 2~3%대의 급락세를 보였습니다.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다음 달 5일 이후에도 어떻게 될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 경제는 디폴트가 나느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탈퇴하느냐를 떠나서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가 자국 통화 드라크마를 버리고 유로화를 택하면서 갑자기 금리가 낮아졌습니다. 이에 국민은 물론 정부도 돈을 펑펑 써댔습니다. 정치인들과 결탁한 부자들은 조세 회피로 배를 불렸습니다.
유로존이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면서 그리스는 거품이 붕괴했지만 자국 통화를 포기했기 때문에 통화 약세에 따른 수출과 관광 수입 증대 효과도 누릴 수 없습니다.
긴축을 반대하는 그리스에 대해 ‘베짱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습니다. 독일 등 북유럽은 열심히 일하는 ‘개미’지만 그리스는 자신이 해야 할 숙제도 안 하면서 돈 내놓으라고 징징댄다는 것이지요.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채권단도 욕을 먹어도 쌉니다. 그리스가 지난 2010년 5월 첫 번째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 채권단 요구에 따라 긴축을 했지만 달라진 게 뭐가 있나요. 상황은 더욱 악화했습니다.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그동안 25% 위축됐습니다. 실업률은 25%를 넘어 유로존 최고 수준이며 청년 실업률은 60%가 넘습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IMF의 혹독한 구조조정 요구에 고생했던 우리나라 국민이 떠오릅니다. 솔직히 한국도 위기를 극복하면서 IMF 모범생이라는 말을 듣지만 외환위기 전과 이후의 ‘삶의 질-특히 고용’을 비교하면 IMF와 세계은행(WB)을 필두로 하는 서구 중심의 국제 다자간 금융기구 솔루션이 유효한 지 의문이 갑니다.
그리스가 그동안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자금 중 대부분이 실물경제에 투입되기보다는 독일 등 채권단의 빚을 갚는 데 쓰였습니다.
이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폴 크루그먼은 국민투표에서 차라리 국제 채권단 방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게 낫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국민투표 이후를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주요 외신들이 그리스 사태에 대해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기사들을 보면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 그리스 정부나 채권단 모두 그리스 경제를 어떻게 살릴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비전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투표에서 ‘찬성’으로 결정돼 구제금융 지원을 다시 받고 유로존에 잔류한다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 하에서도 성장에 대한 고민이 없는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밖에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욕을 먹어야 하면서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아마 그리스 정치인들일 것입니다. 아무리 국민이 밑에서 열심히 노를 젓고 발버둥친다 하더라도 선장이 무능하거나 방향을 못 찾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리스처럼 무능하거나 무식하거나 비전 없는 정치인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