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자본시장부 차장
얄팍한 심리에 대한 비난 못지않게 대중의 관심이 모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현장에서는 관심을 넘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우려까지 보탰습니다. 그렇게 몇몇 해프닝이 이어졌고 몇 해가 흘렀습니다. 이제 당시 노출의 주인공을 기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노이즈 마케팅의 한계가 바로 거기까지였으니까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이러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합니다.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악의적인 댓글을 의미하는 ‘악플’보다, 무관심을 의미하는 ‘무플’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가슴골을 드러내며 노이즈 마케팅을 서슴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본시장에도 이런 노이즈 마케팅이 존재합니다. 금융투자 업계 역시 적잖은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니까요. 특히 시장의 관심이 특정 이슈에 집중될 때, 이 같은 노이즈 마케팅은 더욱 성행합니다.
최근 시장의 이슈가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도 예외는 아닙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 반대’ 입장을 낸 이후, 일부 기관이 덩달아 “그럼 우리도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운용사와 자문사, 증권사를 막론하고 이 같은 행태가 속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합병 찬성과 반대, 양측 모두 합리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맞다’ 또는 ‘아니다’를 가르는 이분법으로 따질 일이 아닙니다. 합병 찬성에 대한 논리가 존재하듯, 반대 논리 역시 뚜렷한 당위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반대파(?)에게 뚜렷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외치기 전까지, 삼성그룹 지배구조 이슈에 반기를 든 적이 없습니다. 막대한 자금과 지분을 앞세운 헤지펀드가 반대 입장을 밝히자 이에 편승한 셈이지요. 자본시장의 관심이 모이는 무대 위에서 화끈하게 속옷을 드러내고 과감하게 가슴골을 보인 것과 다름 없습니다. 대중의 관심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이는 후발주자에게 또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이들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증권사조차 반기를 들었습니다. 문제는 “주목을 받기 위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후문이 이어졌다는 것이지요.
지금 저는 삼성물산의 합병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합병이 불합리하고 주주에게 해가 된다면, 이들에게 “왜 지금까지 침묵했는가”를 묻고자 합니다. 엘리엇이 반기를 들지 않았다면 이들이 진정 주주를 위해 합병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엘리엇이 아닌 소규모 증권사가 먼저 반기를 들었다면 이들과 함께 합병 반대를 외칠 수 있었을까요.
자칫 ‘얄팍한 상술’로 오해받을 여지를 그들 스스로 만든 셈이 됐습니다. 그나마 일련의 노이즈 마케팅은 그 효과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우리는 몇 년 전 화끈하게 속살을 노출했던 여배우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