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관을 갑자기 교체한 그리스의 깜짝카드가 국제 채권단과의 협상 과정에 제대로 통하는 분위기다.
그리스 정부는 8일(현지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상설 구제금융 기관인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에 3년간 자금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자금지원 규모는 국제 채권단이 그리스의 경제 및 재정 상황을 고려해 판단 내려야 하는 부분인 만큼 특정짓지 않았다.
그리스는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신임 재무장관 명의로 작성된 요청서를 통해 “구제금융 자금을 지원 받는 조건으로 연금 및 세제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며 재정적 의무 이행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연금 및 세제 개혁안은 그동안 국제 채권단과 그리스가 갈등을 빚었던 핵심 개혁 방안 중 하나다. 그리스가 연금 및 세제 개혁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그간의 강경 자세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도 프랑스에 열린 유럽의회에서 “그리스와 유로존에 가장 이익이 되도록 의무를 다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지난 반년동안 국제 채권단과 구제금융안을 논의하면서 수위 높은 발언으로 국제 채권단을 자극했던 자세에서 벗어나 다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모든 당사자들이 ‘유럽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 “유로존과의 결별 선택한 적이 없다”는 등 감성적인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의 관계 개선에 차칼로토스 신임 재무장관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과거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은 거침없는 화법으로 국제 채권단과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석달 전 라트비아 리가에서 열렸던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직후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을 향해 ‘시간을 낭비하는 인물’, ‘도박꾼’, ‘아마추어’라는 혹평이 쏟아진 것도 당시 분위기를 가늠케 했다.
반년동안 구제금융 협상을 이끌어왔던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보다 취임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차칼로토스 신임 재무장관이 협상 테이블에선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와 관련 “차칼로토스 신임 재무장관은 유로그룹에서 ‘활발하고, 존경받는 신사’로 환영받고 있다”고 전했다. 몰타 재무장관은 “차칼로토스 재무장관이 협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면서 “말씨도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과) 분명한 차이를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 지원을 동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스는 은행 영업중단 등 자본통제 기한을 오는 13일로 연기했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를 우려하는 비관론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한편,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도 “그리스의 플랜B는 다른 통화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