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아파트 이름으로 경쟁을 벌이면서 별의별 이름들이 다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 영어, 프랑스어에 우리말을 더해 길고 어렵다. 해당 건설업체의 설명을 듣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정체불명의 이름도 많다. 기자도 한 번 들어서는 절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시부모를 못 오게 하려는 며느리들의 요구가 반영됐다는 우스개가 나왔을까.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름을 특이하게 지어야 소비자들의 흥미를 자극해 아파트 인지도가 올라가고, 그래야 분양률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더 고급스럽다고 느끼는 잘못된 언어의식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다.
브랜드 가치평가 전문회사인 브랜드스탁이 최근 발표한 아파트 부문 연간 브랜드가치평가지수(BSTI) 순위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다. 힐스테이트, 롯데캐슬, 아이파크, 위브, 호반베르디움, 센트레빌, 더샵, 스위첸, 한라비발디, 리슈빌, 데시앙, 코아루 등 영어나 프랑스어에서 따온 이름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상위 24위권 안에 우리말 아파트 이름은 꿈에그린과 하늘채 두 개밖에 없다.
언뜻 봐서는 우리말인지 외국어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아파트 이름도 있다. 몇 번을 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푸르다라는 순 우리말에 대지, 공간을 뜻하는 ‘GEO’를 결합한 ’푸르지오’, 영어 ‘e(experience의 첫 글자)’와 우리말 편한 세상의 합성어 ‘e편한세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보그병신체’의 이름 짓기가 불러온 결과다. 보그병신체란 유명 패션 잡지인 ‘보그’에 비속어인 ‘병신’을 붙인 신조어다. 우리말로 표기는 하지만, 외국어나 다를 바 없는 국적 불명의 명칭이나 문장 등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사이드 쉐이프를 고려해서 플랜을 플렉시블하게, 레벨을 풍성하게 하고, 이 박시한 쉐이프에 리듬감을 부여해서…”(영화 ‘건축학개론’ 중 대사) 식의 문장이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남용한 결과다.
‘병신’은 신체의 부위가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혹은 그런 사람을 일컫는다. ‘불구, 무능, 부족, 불편’ 등의 의미를 함유해 주로 남을 욕할 때 쓴다. 따라서 이런 말은 되도록 쓰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언중 사이에 보그병신체란 말이 오르내리는 건 우리말의 잘못된 표현들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말과 글을 지키고 발전, 계승하는 일은 국민의 기본이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민족의 정신인 말과 역사는 살아 있어야 한다. 국가도 없이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민족이 2000년 만에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신앙과 더불어 언어를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 건설업계도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생각보다는 건물을 튼튼하게 잘 지어 경쟁률을 높이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 희망적인 건 건설사들이 요즘 우리말 아파트 이름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시부모가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 한 번 오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워 안 간다나 어쩐다나. 개나리, 무지개, 은하수, 별가람…. 우리말 아파트 이름이 얼마나 정겹고 편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