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자식들의 후계경쟁 소동으로 67년동안 전두지휘한 경영권을 손에서 놓았다. 신 총괄회장이 공식적으로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그가 세운 한·일 롯데그룹은 이제 그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원톱 경영시대가 열렸다. 껌 하나로 시작해 한국 재벌 5위에 오르기까지 신 총괄회장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신격호 총괄 회장, 일본서 유학 중‘껌 사업’출발…한국 재벌 5위로 성장=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난 신 총괄회장<사진>은 약관 20세인 지난 1941년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등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와세다실업학교 고등부(현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신 총괄회장은 1948년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 당시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씹던 추잉껌을 상품화해 사업에 나선다. 탁월한 경영수완이 빛을 발하며 1959년 롯데상사를 창립했고 이후 롯데부동산·롯데아도·롯데물산 등을 잇따라 설립해 유통업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신 총괄회장은 1966년 일본에서 번 돈으로 한국에 진출,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해 그 동안 불모지나 다름없던 식품 · 유통 · 관광산업의 개척에 나선다. 특히 70년대 들어 관광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신 총괄회장은 1973년 한국 사업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를, 1979년 그룹의 중추 회사인 롯데쇼핑을 각각 설립했다. 1988년 서울 잠실에 호텔 롯데월드를 개관, 호텔롯데를 명실상부한 세계 10위권 호텔로 성장시켰다. 그해 호텔롯데 면세점도 오픈하면서 유통·관광산업을 확장시켰다. 2000년대 들어 신 총괄회장은 글로벌 사업에 박차를 가했으며, 2010년 평생의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롯데월드몰)와 롯데월드타워 건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기준 한국 롯데그룹은 80개 계열사를 보유했으며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한국 재벌 톱5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롯데는 자산 규모가 3144억엔(약 2조9667억원)에 달하며, 한국 롯데쇼핑은 40조원에 이른다.
◇베일 속 신격호 2세 후계구도…장남 日 롯데-차남 韓 롯데 경영= 신격호 총괄회장의 사업이 규모를 더해가면서 2세들의 경영 참여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먼저 신 총괄회장은 총 3명의 부인을 뒀다. 첫 번째 부인 고(故) 노순화 여사와의 사이에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뒀다. 두 번째 부인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결혼해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서미경 여사와의 사이에서 막내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태어났다.
신 총괄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2006년부터다. 2006년 1월, 당시 일본 롯데 부사장이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쇼핑 등기임원에서 물러났으며, 그해 3월 차남이자 롯데그룹 부회장이었던 신동빈 회장은 롯데쇼핑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로써 신 총괄회장의 2세 후계구도가 일본롯데는 장남이, 한국롯데는 차남 체체로 굳히는 양상으로 흘렀다.
신 총괄회장은 한·일 롯데그룹 모두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으며,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일명 ‘셔틀 경영’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현재는 롯데호텔 소공점 신관 34층에 집무실 겸 거처를 두고 생활하고 있다. 94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계열사별로 실무 임원에게 보고를 받으며 경영활동을 손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차남 신동빈 회장은 ‘유통제국’인 롯데그룹의 글로벌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5월 팰리스 호텔을 인수한 호텔롯데는 지난 2010년 롯데호텔 모스크바 개관을 시작으로 베트남, 괌 등에 이어 뉴욕에도 진출하게 됐다. 또 유화부문의 핵심사인 롯데케미칼은 2011년 미국 앨라배마주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생산설비 건설에 나섰으며, 지난해 2월엔 미국 액시올사와 합작으로 루이지애나주에 셰일가스를 이용한 에탄크래커 플랜트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7월 16일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다. 장남을 제치고 차남이 한·일 롯데 통합 경영자로 나서면서 후계구도가 윤곽을 잡혀가는 기류를 보였다.
◇실패한 ‘장자의 난’…표면상 물러난 신격호 회장= 지난 2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사인 일본롯데홀딩스가 이날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고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전격 해임했다고 보도했다.
재계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27일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친인척 5명과 함께 전세기 편으로 갑작스레 일본으로 건너갔다. 94세 고령에 흴체어에 의지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신 총괄회장이 4년 만에 일본행에 나선 것은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롯데홀딩스의 이사회를 열어 자신을 제외한 신동빈·쓰쿠다 다카유키 대표이사 부회장 등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했다.
신 회장은 다음날 현지에서 일본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개최, 신 총괄회장의 27일 이사 해임 결정이 상법이 규정해 놓은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적인 사항이라고 규정하고, 회장직에서 해임 결의했다. 결국 장자의 난은 실패로 끝난 셈이다. 사건의 일단락은 신 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명예회장으로 추대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직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 불씨는 남아있다. 신 총괄회장은 표면상 등기임원직에서 내려왔지만 그룹 지배구조 상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바로 한·일 롯데의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일본 비상장사인 ‘광윤사’의 최대주주가 신 총괄회장이다. 향후 신 총괄회장의 의중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향후 지분 상속도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