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균 정보통신팀 차장
밥그릇하면 기관장 자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정부 산하 기관장이라는 밥그릇은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인사들의 전유물로 인식된 지 오래다. 최근에 들은 소문은 EBS 차기 사장 하마평이다. 1990년 교육전문 채널로 출범한 EBS 교육방송은 유아부터 학생, 주부, 노인층까지 모든 국민이 시청하는 국민방송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골동품의 가치를 지닌 개밥 그릇보다 수천배, 수만배 무형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EBS 현 사장의 임기는 오는 11월 말이다. 이명박 정권시절인 지난 2012년 11월 말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이 신용섭 사장을 임명했다. 신 시장은 아직 4개월의 시간이 남았지만 그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이가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현시점에서 거론된 인사들은 대부분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사들이다. 모 대학 S교수는 현정권 여권 실세인 A씨와 가깝다고 한다. 정권 핵심이라는 후광효과로 EBS 사장으로 갈 것이란 설이 돌기 시작했다. 또 다른 대학에 재직 중인 K교수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K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알려졌다. 물론 하마평이니 소문으로 그칠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경계감이다.
군대 용어인 낙하산은 언제부터인지 부정적인 인사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능력과 실력보다는 정권 실세에 빌붙어 분수에 맞지 않게 한자리씩 꿰차는 엽관제로 둔갑했다.
낙하산 인사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에도 있다. 미국은 엽관제의 역사가 긴 편이다. 행정부가 교체되면 정부에 입각했다가 선거에서 지면 물러나는 워싱턴 특유의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가 오랜 엽관제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오래전부터 엽관제의 부작용을 알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미국 제20대 대통령인 제임스 A. 가필드는 엽관제로 피살된 불운의 대통령이다. 이후 미국에서는 1883년 펜들턴법을 제정해 공식적으로 엽관제를 폐지했다.
프랑스에서는 철도공사(SNCF)·전기공사(EDF) 등 대규모 공기업 사장은 대통령이 미리 내정한다. 대체로 정치적 중립성과 능력을 검증받은 후보가 임명되기 때문에 논란은 없다. 무능한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부한다. 이는 이사회에 노동조합, 시민단체, 언론인 등 외부 인사가 적극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 일본은 공직 퇴임 후 공기업에 임용되거나 민간기업으로 이동하는 전통이 오랜 기간 유지됐다. 하지만 2010년 들어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인사공정위원회’ 등의 제도적 장치를 모색했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장치는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고위공직자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퇴직공직자 재취업심사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연말에는 인사혁신처를 신설하고, 삼성 출신의 인사 전문가를 발탁했다. 고위공직자의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허점이 생기고 있다. 고위공직자 출신이 아닌 정권 실세와 가까운 인맥들이 산하기관과 유관기관으로 가는 길을 확대했다는 비판이다. 주로 정치활동을 하는 폴리페서(Polifessor)들이다. 일각에서는 전문성을 내세워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다소 자유롭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전문성보다 중요한 여러 가지 요소를 간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정치권과 연결된 인사가 어느 정도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할지도 미지수다.
이쯤되자 관련 기관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행정 경험이 풍부하고 업무 연관성이 있는 공직자 출신이 낫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격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만큼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EBS 차기 사장에도 인사가 만사가 될 수 있는, 능력있는 적임자가 선임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