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칼럼] 평가제도를 혁신하자

입력 2015-08-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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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인사고과철이 되면 모두가 분주하다. 복잡한 평가 기준과 공정하다는 절차에 따른 평가 결과는 엄정하게 발표된다. 그런데 인사고과 발표 이후에는 대체로 불만이 훨씬 많다. 그래서 회사 주변 술집들은 장사가 잘 된다. 뭔가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런데 인사평가는 놀랍게도 사람들의 상식에 부합하면 잘 된 것으로 평가된다. 사람들은 누가 잘 하고 누가 잘 못하는가를 감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교하고 복잡한 평가 시스템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평가제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혁신돼야 하는 이유다.

이제 세상은 복잡해지고 업무는 복합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단순한 업무들은 IT로 대체되고 상호 의존성이 높은 열린 네트워크 형태로 업무가 바뀌고 있다. 개개인의 업무들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 나누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조직의 업무를 분석해 보면 개인의 업무보다 상호 소통의 업무가 더욱 빨리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조직 내부보다 외부와의 소통이 급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조직은 열린 복잡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KPI(핵심평가지표)로 대표되는 평가 체계는 과거의 단순계 형태의 조직에 적합했다. 평가 항목들이 실제 업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평가 항목 간의 가중치와 관계는 한마디로 복잡하고 근거가 취약하다. 개개인의 동기부여도 ‘당근과 채찍’이라는 외부적 요소에 의존해 목표 대비 성과로 승진과 성과급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조직은 ‘협력과 창조성’이라는 미래 조직의 핵심 요소가 위축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치 복잡계인 주가 변동을 다수의 지표로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과 흡사한 착각이다.

과거 공산주의 계획경제는 모든 국가의 경제 활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오류에 함몰돼 복잡계로 진화한 시장경제와의 경쟁에서 도태됐다. 작금의 기업과 공공기관의 평가 체계는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몰락한 과정과 유사한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다중지표관리(BSC) 등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도 급속히 변화하는 업무 환경을 기계적 평가 체계가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더구나 와해적 혁신 경쟁에 절대적인 창조성과 도전은 기존의 평가에 반영하기는 어렵다. 목표 대비 실적으로 평가하는 조직의 문화는 목표 설정을 낮추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 보수적으로 변모해 도전적 사내 기업가정신은 쇠퇴하게 된다.

이미 구글 등 많은 기업들이 단순한 상호평가로 인사평가를 대체하고 있다. 급변하는 업무 환경에서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KPI가 아니라 사람들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쟁뿐 아니라 협력도 평가한다. 사람들은 기업 환경 변화에 따른 목표의 동적 변화도 수용한다. 사람들은 평가 항목 간의 관계와 가중치도 알아서 반영한다. 개개인의 평가는 편차가 존재할 수 있으나, 주관의 객관화라는 집단지능은 믿을 만하다. 그러면 인사고과 이후 벌어지는 상식과 평가의 격차는 자동적으로 해소된다. 문제는 주변 술집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단, 전제 조건은 있다. 기업 문화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상호 평가는 편향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학연, 지연 등의 파벌이 업무 성과보다 우선하면 상호 평가는 불가능하다. 물론 평가 자체를 평가하는 메타 평가가 도움은 된다. 그러나 좋은 평가가 우리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공유가치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에어비앤비, 드랍박스 등을 배출한 초우량 창업지원 조직 y-combinator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기업문화인 이유다.

미래 조직은 각자 스마트폰을 아바타 삼아 상호 연결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모할 것이다. 성공적 신발 쇼핑몰인 자포스의 토니 대표는 자기조직화하는 네트워크 조직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기업 환경, 조직, 업무가 복잡하게 얽히고 급변하고 있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와 너무나 흡사한 변화가 평가에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구시대의 평가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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