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현주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
‘여성은 가사, 남성은 (사회적)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사회 구성원의 인식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런 인식은 역사적 부산물이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 여성이 있기까지 전통과 역사 속 여성의 역할과 모습, 창의적 예술 세계 등 여성 문화를 조명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선 역사박물관이 가장 유용하다.
인류의 역사에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으나 역사의 기록에 여성은 없다. 기존의 역사서나 박물관이 몰성적(沒性的, gender-blinded) 관점으로 ‘무의식적으로’ 여성에 대한 언급을 누락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역사의식을 남성 중심의 역사의식으로 이끄는 것이며 여성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여성사박물관을 건립, 성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의 역사 전시, 교육, 연구, 문화유산과 유물 수집 관리, 아카이브 구축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여성사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여성사박물관은 ‘남녀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여성 정책의 하나로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의 국립여성사전시관은 2004년 제2차 여성정책기본계획(2003~2007)에 제시된 ‘여성 역사 인물 및 여성 관련 문화재 발굴 확대’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되었으며, 제3차 여성정책기본계획(2008~2012)에서는 ‘평등문화의 확산’을 위한 정책사업으로 추진됐다. 현재의 여성사전시관을 규모(예산 및 면적), 장소의 한계를 넘어 국립여성사박물관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둘째, 여성사박물관은 문화관광 정책적 측면에서 한류 콘텐츠 활성화의 중심기관으로 건립해야 한다. 외국 여성 관광객의 주요 관심사가 쇼핑과 음식이라는 조사 결과를 볼 때 여성사박물관이 역사적 관점에서 한방화장품 만들기, 김치 담그기 체험 등의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여성사 콘텐츠 개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셋째, 양성평등 문화 확산의 중심기관으로 건립해야 한다. 여성과 관련된 의식주 변천이나 한국 특유의 어머니상, 혹은 ‘아줌마상’을 형상화해 역사 속에서 가족과 민족을 위해 강인하게 버텼던 한국 여성의 저력을 보여준다면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의 삶과 역사가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될 것이고, 이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더불어 평등문화 확산에도 기여할 것이다.
넷째, 전 세계적 여성사박물관과의 교류 협력이 필요하다. 1960~70년대 여성해방운동에 힘입어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박물관 건립 운동이 전개됐다. 1981년 세계 최초의 여성박물관이 독일의 본에 건립된 것을 시초로 현재 70여개 여성사박물관이 건립·운영되고 있다. 박물관 간의 네트워크가 구축돼 2년에 한 번씩 국제대회도 열리고 있다. 세계 여성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해 공통의 여성 역사와 여성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 운동은 지난 2012년 4월 23일 한국여성사학회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국립여성사박물관 설립을 위한 건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시작됐다. 그해 9월 국립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현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가 발족했다. 2013년 12월 10일에는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 조항이 포함된 여성발전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같은 해 12월 23일에는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운동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사단법인(역사·여성·미래)이 발족했다. 사단법인은 ‘여성사 강사 양성과정’과 여성사 대중강좌를 개최하는 동시에 여성사박물관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왔다.
2014년 12월에는 여성가족부 연구용역과제로 국립여성사박물관 부지 선정과 콘텐츠 개발이 진행됐다. 그러나 2015년 들어서 여성사박물관의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연구용역 결과의 후속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여성사박물관 추진단 설치’ ‘부지 선정’ ‘전시 콘텐츠 세부작업’ 등이 더 이상 진전되고 있지 않다.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운동의 외연을 넓혀 범국민 차원에서 전개해 박물관 건립 기금 모금과 콘텐츠 개발에 전력하는 한편, 정부의 적극적 정책 추진을 유도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