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김기섭 부산대 총장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사퇴했다. 대학 측은 교수회와 총장 선출방식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고 교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처럼 총장직선제는 대학의 민주화와 직결돼 있다. 하지만 총장직선제 폐지는 박근혜 정부의 방침이다. 따라서 전국의 국립대에서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 발생한 고 교수의 투신이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파문과 파장. 기자들도 헷갈려 하는 단어다. 그런데 국어원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파문’은 어떤 일이 다른 데에 미치는 영향으로, ‘파장’은 충격적인 일이 끼치는 영향 또는 그 영향이 미치는 정도나 동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뜻풀이를 달았다. 사전상으로는 거의 같은 의미다. 이는 언중을 지나치게 따라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문과 파장은 엄밀히 다른 말이므로 구분해 써야 한다.
파문(波紋)은 수면에 이는 물결의 모양이다. 잔잔한 호수나 강, 바다에 돌멩이를 던지면 수면 위에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데, 이때의 무늬를 의미한다. 이처럼 파문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람, 비, 물고기 움직임 등 외부 원인으로 만들어진다. 평화롭던 일상에 사건이 터지면 사회가 술렁이게 되는데, 이를 잔잔한 수면에 물결이 이는 것에 빗대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이 일었다’ 등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파문은 어떤 일의 영향으로 사회가 술렁거리고 혼란스러워지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파장(波長)은 물결이 만드는 마루와 마루 또는 골과 골 사이의 거리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파장은 파문의 길이다. 따라서 파문이 커지면 파장은 길어진다. 순서상으로 파문이 일고 나서 파장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문이 일기도 전에 ‘파장이 일어났다’는 표현은 쓸 수 없다.
아직도 구분해 쓰기 어렵다면 이것만 기억하자. 파문은 (불러)일으키다, 휩싸이다 등의 서술어와 함께, 파장은 ‘긴’, ‘짧은’ 같은 수식어나 서술어 ‘크다’ 등과 함께 써야 한다. 그래야 문장이 자연스럽다.
총장직선제는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88년 도입됐다. 이후 교수회 내 파벌 간 알력 등 문제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폐해를 바로잡는 것 또한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총장직선제 폐지를 집요하게 밀어붙이며 대학의 자율성을 옥죄고 있다. 경북대·공주대·방송통신대의 경우 간선제로 뽑힌 총장 후보조차 교육부가 명확한 이유도 없이 임명 제청을 거부해 1년 넘게 총장 공석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비슷했던 한국체육대 총장에는 결국 ‘친박’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임명됐다. 정부가 국공립대학을 산하기관쯤으로 여기며 대학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평생 연구실에서 학문에만 몰두하던 교수가 죽음으로 항변한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화의 중요성을 정부만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