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으로 구성된 별도 윤리실 운영
2010년 3월 3일 미국 민주당 하원 중진인 20선의 찰스 랭글(Charles B. Rangel) 하원의원은 세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하원의 상임위원회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는 세입위원장직을 사퇴한 이유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2010년 2월 말 윤리위원회가 랭글 의원의 윤리규범 위반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그가 윤리규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조사 결과는 간단했다. 2007년과 2008년 카리브뉴스재단이 후원하는 컨퍼런스 참석과 관련된 여비를 지원받았다는 이유였다. 미 하원은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으로부터 여비 지원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 국회의원들은 성폭행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아도, 심지어 수억원을 받아 챙겨 검찰에 구속돼도 아무 징계가 없다. 우리 국회가 해외의 윤리규범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다.
미국 하원 윤리위는 엄격한 윤리규범을 적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 하원 윤리위는 의원의 윤리위반 사실을 심사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전에 의원이나 직원의 특정한 행동이 윤리규범을 위반하는지 여부를 자문해주는 역할도 한다.
의원윤리의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치에서도 의원의 윤리위반 사실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자, 시민단체들은 “의원에 의한 의원 윤리의 심사가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고 비판해 왔다. 이는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가 2008년 하원 내에 독립기구로 의회윤리실(the Office of CongressionalEthics)을 설치한 배경이 됐다.
의회윤리실은 의원이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의원이나 의회 직원의 윤리위반 사실에 대한 사전조사를 실시해 윤리위에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국회에도 윤리자문위가 있지만 말 그대로 ‘자문’만 할 뿐 조사권한도 없고, 이들의 견해가 징계에 반영되는 경우도 드물다.
무엇보다 윤리규정에서부터 미국과 우리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 하원의 윤리규정은 윤리의식 결여가 별 것 아닌 ‘작은 선물’에서 시작된다고 보고받을 수 있는 선물의 구체적인 범주까지 정했다. 기본적으로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으로부터 그 어떤 선물도 받을 수 없으며, 그 외 기업이라 하더라도 연간 총액 100달러 내에서 50달러 미만의 선물만 받을 수 있다. 선물의 범주도 기념품, 출신 주의 특산품, 친척의 선물 등으로 제한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는 ‘국회의원은 강연, 출판물에 대한 기고, 기타 유사한 활동과 관련하여 개인·단체 또는 기관으로부터 통상적이고 관례적인 기준을 넘는 사례금을 받아서는 아니된다’고 돼 있다. 두루뭉술한 규정으로 ‘상징성’ 그뿐이다.
최근 통과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 역시 선물이나 식사 접대의 상한만 정한 데다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언론인 등에 똑같이 포괄적으로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 윤리위 관계자는 “부족하지만 지금의 규범만 엄격히 적용해도 징계를 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하다”면서 “의원윤리 강화를 위해 가장 큰 효과를 내는 것은 강제력이기 때문에 윤리위의 징계 수위를 높이고 즉각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 윤리위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