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뉴미디어부 모바일팀장
지난 8일 발생한 이 사건은 11일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면서 인터넷에서 이슈가 됐다. 애당초 팩트는 빈약했다. ‘길고양이 집을 만들던 중년여성이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고 사망했다’가 전부였다. 당시 경찰이 “고의 범죄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언론의 넘겨짚기는 지나쳤다. 캣맘 혐오자가 한 범죄라는 억측 하에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기사를 내놓았다. 용의자가 드러난 이후 동물보호시민단체인 ‘카라’는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캣맘’의 비극적인 사고를 놓고 선동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또 동물을 보호하는 자원봉사자 비하 등 자극적인 보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확인되지 않은 ‘캣맘 혐오증’으로 도배한 언론들의 행태는 충분히 질책받을 만하다.
그렇다면 이런 섣부른 결론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는 바로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상관착각’이다. 관계가 없는 두 변수에 대해 서로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른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이다. 까마귀 날아가는 일과 배 떨어지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당치 않은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보는 거다. 그 때문에 무고한 까마귀만 죄를 뒤집어쓴다. 캣맘 사건에서도 ‘캣맘’과 ‘벽돌살인’이라는 요인이 ‘캣맘을 살해한 건 캣맘 혐오자’라는 착각을 만들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정보가 많아질수록 상관착각에 빠질 가능성은 커진다. 사회생물학자인 레베카 코스타는 ‘지금, 경계선에서’라는 책에서 정보화 시대에 사람들은 점점 더 넘겨짚기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보가 넘쳐나는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증거에 대한 기준을 느슨하게 낮추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기보다 “이래서 그랬나 보다”에 만족한다.
구글에 ‘캣맘’이 들어간 기사를 검색해 보니 사건 발생 이후 열흘 동안 18만 건을 넘어섰다. 언론사마다 무지막지한 경쟁을 벌인 결과다. 이런 와중이니 정확성과 사실 확인은 무시되기 일쑤다. 뉴스 수용자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 관심사에 대해 휴대폰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빨리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뉴스의 정확성이란 원칙은 때로 ‘그 시점에 진실에 가장 가까운 버전’ 정도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디지털시대 정보의 속도와 양에 대한 경쟁은 사실 확인과 정확성을 위협한다.
상관착각과 디지털시대 뉴스의 속도 경쟁. 무책임한 보도에 대한 핑계나 변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런 현실들로 인해 앞으로 또 다른 ‘캣맘’ 보도의 오류와 같은 일들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바꿔 말하면 기자와 언론의 사실 확인과 정확성에 대한 의무가 그만큼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용인 벽돌사건 피해자의 딸이라고 밝히며 SNS에 올린 글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글 속에 “엄마가 만든 김장을 다 먹으면 엄마가 없다는 게 실감날까봐 못 먹겠어”라는 대목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딸은 취재진의 무례함과 기사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기자들이 상중에도 전화해서 캐묻고 찾아오고 맘대로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또 “동의도 없이 내 목소리를 뉴스에 내보냈다”며 “나는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는 기사를 내보내달라는 것인데 고양이 보살핀 내용만 편집해서 나갔다”고 전했다. ‘캣맘’으로 드러난 언론의 민낯, 이래저래 부끄럽고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