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휭!” 사늘한 가을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철새가 적막함을 달래줄 뿐이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2시간여 만에 도착한 곳이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시즌 최종전이 열린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 골프장 풍경이다.
어디보다 뜨거워야 할 현장이건만 열기는 없고 적막한 기운만 감돈다. 텅 빈 코스엔 선수 외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프레스룸은 대회 흥행을 대변했다. 빈 기자석을 ‘무단으로’ 점거해버린 파리 서너 마리가 조롱하듯 활보하고 있다. 벌써 수년째 스폰서 부재로 난항을 겪고 있는 KPGA 코리안 투어의 오늘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갤러리 발길이 뜸한 대회장에 비까지 내렸다. 대회 둘째 날 오후 가랑비로 시작된 빗줄기는 다음날 오전 모진 바람을 동반한 굵은 빗방울로 변해버렸다. 하늘을 덮어버린 검은 구름은 쉬지 않고 빗물을 쏟아내며 선수들의 열정마저 식혀버렸다.
선수와 캐디가 우산 하나에 의지해 비를 피해본다. 손바닥만 한 핫팩으로 떨리는 몸을 녹여보지만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을 당해낼 길이 없다. 빗물로 흠뻑 젖어버린 몸은 닦아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린 위로 차오른 물은 퍼트한 볼을 멈춰 세웠다.
“빵!” 경기 중단 신호음이 울렸다. 그리고 약 2시간 뒤 우천 취소가 발표됐다. 결국 한 라운드(18홀)가 축소된 54홀 승부로 우승자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도 비는 멎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빗속 혈전이지만 열기가 사라진 대회장은 시즌 최종전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챔피언 조를 따르는 무리는 대회 관계자들을 포함해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대회다. 게다가 상금왕 등 각종 타이틀이 걸린 대회의 챔피언 조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야 할 현장은 사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선수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해외로 떠나버렸다. 상금순위 1ㆍ2위를 다투던 이경훈(24ㆍCJ오쇼핑)과 최진호(31ㆍ현대제철)는 각각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와 미국프로골프(PGA) 웹닷컴 투어 출전을 위해 이 대회에 불참했고, 평균타수 1위를 달리던 김기환(24)은 아시안 투어 출전으로 이 대회 불참을 알렸다. 2015 KPGA 코리안 투어는 그렇게 아쉬움만 잔뜩 남긴 채 내년 시즌을 기약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마지막까지 KPGA 코리안 투어와 함께한 사람들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후원을 잊지 않은 기업들, 비바람을 맞으며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골프팬들, 선수들이 최상의 플레이를 발휘할 수 있도록 헌신한 선수 관계자들이 있었기에 사늘하게 식어버린 KPGA 코리안 투어에 훈훈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KPGA 코리안 투어의 흥행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훗날 제2ㆍ3의 전성기를 맞는다면 이날 KPGA 코리안 투어를 위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을 잊어선 안 된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모두가 외면할 때 진정으로 KPGA 코리안 투어 곁을 지킨 사람들이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