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황정민 선배와 함께 해 올 한 해 ‘사도’ ‘베테랑’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난 항상 이런 게 부끄럽다. 민망하고 나서기 싫은 순간이 더 많다. 항상 부끄러워하는 일로 매 순간 성장하고 다그치고 또 성장하는 인간, 그런 배우가 되도록 하겠다.” 역시 유아인 이었다. 26일 열린 제36회 청룡영화제에서 ‘사도’로 남우주연상의 트로피를 든 유아인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배우로서 대중에게 부족함을 알고 늘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의미있는 수상소감으로 대신했다. 그의 소감을 들으며 요즘 유아인이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제작발표회장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전작이 잘 돼서 기분 좋지만,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다가와 있는 작품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기쁠 땐 기쁘고 슬플 땐 슬픈지만 이 또한 지나갑니다. ‘육룡이 나르샤’가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가장 큰 불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집중하고 싶습니다.”
지난 9월 30일 서울 SBS에서 열린 사극‘육룡이 나르샤’ 제작 발표회에서 ‘유아인이 영화·방송계 대세’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유아인 한 대답이다. 대중매체와 전문가는‘대세’라는 수식어를 동원해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신만의 연기 색깔과 캐릭터 문양을 드러내며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성을 높인 유아인에게 극찬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대중은 연기 하나로 수많은 관객과 시청자에게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는 유아인을 뛰어난 배우로 인정하는 진정한 상(賞)을 수여하고 있다.
어제 인기의 허명에 갇히지 않고 오롯이 오늘의 작품에 전념하겠다는 유아인 이기에 오늘의 유아인(29)이 될 수 있었다. 데뷔 11년 차 20대이지만 진화의 폭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나날이 발전하는 그런 유아인 말이다.
유아인이 영화‘베테랑’‘사도’를 연달아 성공하게 하고 대형 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주연을 맡으며 201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며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뭘까.
“애초 조태오 역 물망에 올랐던 젊은 배우들이 많았다. 많은 배우에게 캐스팅 제의를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모두가 조태오 역을 거절했다. 악역이어서 이해하지만, 그 모습들을 보면서 솔직히 안타깝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유아인의 선택이 옳았고 현명했다. 유아인이 연기를 참 잘해줬다.” 유아인을 2015년 충무로 대세로 부상시킨 영화‘베테랑’의 캐스팅 과정에 대한 황정민의 언급이다. ‘베테랑’을 통해 1,000만이라는 꿈의 흥행기록을 수립한 뒤 영화 ‘사도’시사회가 끝나고 기자간담회에서 유아인은 말했다. “1,000만 관객기록은 매우 고맙고 기쁘지만, 배우로서 여전히 배가 고파요. 배우는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사는 사람이다. 어떠한 작품에서도 완전히 불덩이를 풀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라고.
황정민의 언급과 유아인의 각오에는 오늘의 유아인을 만든 원동력이 담겨 있다. 바로 유아인이 수입과 명성에 직결되는 인기보다는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연기력과 캐릭터의 스펙트럼 확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래서 유아인은 젊은 스타들이 꺼리고 힘들어하는 작품과 캐릭터에 도전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있다.
이런 이유로‘사도’의 송강호의 찬사가 나온 것이다.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정직함과 진정성을 느꼈다. 테크닉적으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그걸 경계하고 정직하게 연기를 해나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도는 어떤 배우가 하더라도 광기를 표현할 때 기교를 부리고 싶은 유혹이 있다. 그런데도 유아인은 자기 진심을 믿고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어 대견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아인의 스물아홉 자연인으로서의 삶과 2004년 드라마‘반올림’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이후 11년간의 배우로서의 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자신이 지키려는 신념과 소신이 고정관념과 충돌하면서 힘겨워하기도 했고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미부여 할 수 있고 자신이 인정하는 일에는 모든 것을 던졌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제가 워낙 반항아라 부모님이 힘들었을 거에요. 학창시절 어머니는 저 때문에 학교에 수시로 불려다니시기까지 했고요. 고교 시절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회의적이었고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어요. 그런데 연기는 참 재밌고 스스로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래가 지극히 불확실한 배우의 삶을 선택했다. 연기가 좋고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마음 하나만을 믿고.
“배우로서는 모르겠고 저는 그냥 멋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봐도 멋있는 사람 요. 허세 잔뜩 들어서 박수받는 사람 말고요.”다른 사람 시선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이 멋있다고 인정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삶의 스타일은 배우 생활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른 사람이 꺼리고 힘들어하는 작품이나 배역이라도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작품적 의미가 있고 배우로서 진화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기꺼이 선택한다. 그 선택과 도전이 배우로서 산 지난 11년간의 삶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패션왕’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밀회’ 그리고 영화 ‘완득이’ ‘깡철이’ ‘베테랑’ ‘사도’ 등의 성공, 독자적 연기 세계 구축과 확장, 스타덤으로 나타났다.
스타보다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고 대중이 인정하는 연기자로 우뚝 선 데에는 유아인의 빼어난 다면적 이미지 창출력도 한몫한다. 이 또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유아인은 하나의 이미지로 가둘 수 없는 배우다. 이준익 감독이 20대 남자 배우 중 반항적인 이미지를 제대로 표출할 수 있는 배우가 바로 유아인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에서부터 ‘성균관 스캔들’에서처럼 귀여운 꽃미남 이미지까지 이미지의 폭이 광활하다. 이 때문에 영화감독이나 드라마 연출자들이 유아인을 현대극에서 사극까지 그리고 멜로부터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와 작품에 앞다퉈 출연시키고 있다. 이것이 유아인의 전성시대를 연 원동력이기도 하다.
배우에게 가장 큰 상, 즉 대중에게 인정받는 연기자로 자리 잡은 데에는 빼어난 연기력으로 신선한 자극을 주며 배우로서 존재감과 자세를 터득하게 해준 최고 연기자 선배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도 기여를 했다. ‘깡철이’‘완득이’ ‘밀회’ ‘베테랑’ ‘사도’ 등의 작품을 하면서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 김윤석 김희애 황정민 김해숙 송강호와 연기 호흡을 맞췄다. 유아인은 자신보다 뛰어난 선배들과 두려움 없이 연기 경쟁을 펼치면서 정교한 연기력과 진정성을 부여하는 캐릭터 창출력을 쌓아나갔다.
“선배 연기자들의 태도에서 참 많은 걸 배운다. 세밀함, 폭넓음, 집중도, 자신만 아니라 작품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 등을 훌륭한 선배들과 연기하면서 배우고 있다. 끊임없이 긴장하고, 거기서 오는 짜릿함을 연기할 때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곤 하죠. 선배님들과 연기하면서 기죽지 않는 법, 신뢰를 얻는 법, 동등한 파트너로서 연기하는 법도 많이 배웠어요.”
유아인은 덧붙였다. “‘사도’ 언론 시사가 끝나고 나서 가장 기분 좋았던 평가는 ‘송강호 선배와 연기호흡이 좋았다’는 거였어요. ‘육룡이 나르샤’출연하면서 연기 본좌라는 김명민 선배와 함께하는데 연기력과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예요. 제가 힘은 달리지만 정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육룡이 나르샤’가 끝나고 시청자들께서 김명민 선배와 연기조화가 뛰어났다는 평가를 해준다면 매우 좋겠어요.”
연기력과 이미지, 캐릭터의 스펙트럼 확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1년 동안 그랬듯 유아인은 인기와 명성, 흥행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유동근 등 수많은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이 연기했기에 비교당하는 것이 숙명인 SBS 드라마‘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역 선택도 그렇다. 유아인은 아무렇지 않게 “남자 배우라면 당연히 아주 드라마틱한 이방원을 연기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출연제의가 왔을 때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고 작품을 하면서 연기를 더 잘해야 하고 프로다워야 한다. 배우는 무엇보다 연기를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슴에 담고 늘 작품에 임해요”라고 말하는 유아인은 가능성의 나이, 스물아홉이며 연기 11년차에 접어든 배우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성취한 연기적 성과는 놀랍기만 하다. 그의 연기자적 진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제의 유아인보다 오늘의 유아인, 그리고 내일의 유아인에 대중의 기대가 큰 이유다.
“‘대세 배우’라는 칭호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진심으로 연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겠다. 개인의 행복과 영광만을 생각하지 않고, 배우로서 관객과 호흡하려고 노력하겠다.” 지난 10월 3일 부산해운대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보이는 인터뷰’에서 한 유아인의 다짐이다. 그리고 “항상 부끄러워하는 일로 매 순간 성장하고 다그치고 또 성장하는 인간, 그런 배우가 되도록 하겠다.”11월 26일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늘 안주하지 않고 늘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유아인의 각오다.
배우로서 그리고 자연인으로서 유아인을 보면서 진정한 상은 타인의 평가나 찬사, 그리고 전문가나 기관이 수여하는 물리적인 트로피가 아닌 자신이 자신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대중에게 마음으로 인정받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유아인은 분명 2015년 자신을 인정하고 대중에게 인정받은 위대한 상을 받은 배우다.(신세계 사보 ‘My Shinsegae’11/12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