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사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어느 사회이건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대사회가 이익사회인 한, 상이한 이익을 가진 집단 간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다원적 가치들이 공존하게 됐고, 이는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새로운 갈등을 유발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 갈등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갈등이 이제 구조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결코 작지 않은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사회 갈등은 크게 ‘이익 갈등’과 ‘가치관 갈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익 갈등이 주로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갈등이라면, 가치관 갈등은 서로 다른 세계관 및 생활양식이 대립하는 갈등이다. 노사 갈등·지역 갈등이 전자를 대변한다면, 환경 갈등·세대 갈등은 후자를 대변한다.
또 이익 갈등과 가치관 갈등이 결합한 복합 갈등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복합 갈등은 이념 갈등이다. 이념 갈등은 한편으론 상이한 가치관이 충돌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제적 이익이 대립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 갈등이 두드러지는 까닭은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구사회에선 이익 갈등에서 가치관 갈등으로 갈등의 중심이 서서히 변화돼온 반면, 우리 사회에선 ‘압축 성장’에 대응해 이익 갈등과 가치관 갈등이 거의 동시적으로 분출해왔다. 다시 말해, 압축 성장에 대응해 이른바 ‘압축 갈등’이 진행돼온 셈이다.
그렇다면 사회 갈등을 어떻게 완화하고 해소할 것인가. 사회 갈등은 그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처방을 요구한다.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다른 만큼 그 원인에 주목하는 맞춤형 해법이 필요하다. 먼저 이익 갈등의 경우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익이 충돌하는 한, 이를 절충하고 합의하는 것 외에 사실 다른 방도가 없다. 따라서 이익 갈등에 대해선 서로 다른 이익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갈등을 해결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 가치관 갈등의 처방은 이익 갈등과는 사뭇 다르다. 가치관 갈등은 삶의 의미를 달리하는 집단 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그 완화와 해소가 결코 만만치 않다. 이익은 경우에 따라 양보할 수 있지만, 세계관은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게 인간 본연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관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데는 인내를 발휘해 해당 사안에 대해 충분히 숙의하는 게 중요하다. 시민문화적 차원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 및 생활방식을 승인하고 관용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이념 갈등과 같은 복합 갈등의 처방은 정부·국회·정당으로 대표되는 공적 기구가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데에 정치의 주요 역할이 부여돼 있다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정당은 갈등의 조정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정당정치의 경우 갈등 해소에 여전히 소극적이고, 국면에 따라선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수 정당이든 진보 정당이든 갈등 사안을 정략적 시각에서 바라보지 말고, 상대 프레임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기 프레임을 성찰함으로써 갈등 완화 및 해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기 위해서는 갈등 사안을 임의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 수준의 해결을 모색하는 거버넌스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네 가지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사회 갈등 완화와 해소는 사후 대처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방적 갈등 관리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 갈등 조정기구에 실질적 권한이 부여돼야 하며, 갈등 유형에 맞는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사회 갈등 해소가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해당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명확하다는 점을 주목해 찬반 구도를 넘어설 수 있는 혁신적 타협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미시적 수준에서 해당 사안의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맞춤형 정책 대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이런 제도적 처방과 함께 요구되는 것은 문화적 차원에서의 관용의 정신이다. 관용이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이라 해도 용인하는 것을 뜻하며,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의 전제조건이다. 관용과 불(不)관용의 경계를 나누기가 물론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관용의 정신은 매우 취약하고, 이 취약한 관용의 문화는 사회 갈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오늘날 사회 갈등 사안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에만 입각해서 풀어갈 수 없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관용에 대한 다원주의 상상력의 발휘가 중요한 이유다.
2016년과 2017년은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치러지는 만큼 지역 갈등과 세대 갈등을 포함한 사회 갈등이 더욱 격렬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지 그룹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이념 갈등이 예각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복되고 구조화되는 사회 갈등은 결국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를 둘로 나눔으로써 ‘두 국민(two nations) 국가’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점이다. 두 국민을 넘어 ‘한 국민(one nation) 국가’로 나아가는 민주적 사회통합을 일궈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회 갈등의 완화와 해소가 민주적 사회통합을 위한 일차적 과제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