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은 금통위 개혁

입력 2016-01-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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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금융시장부장

한국은행이 박근혜 정부 들어 변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정부 경제정책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례적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실질성장률에 물가를 더한 소위 경상성장률을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질성장률이 부진하면 물가를 높여 경상성장률이라도 목표치에 도달하겠다는 것이다.

예전의 한은 같았으면 펄쩍 뛰었을 일이다. 한은법 1조 1항은 ‘물가안정’을 한은의 존재 이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고물가를 통한 정부의 성장 ‘꼼수’에 동의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의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중앙은행 독립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카인의 후예’에 빗댔다. 카인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중 첫째다. 카인은 아우인 아벨을 죽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살인을 저질렀다. 따라서 ‘카인의 후예’란 최초의 살인자이며 형제를 증오한 카인의 피를 받은 후손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정부와 한은, 양 기관이 치열하게 대립했다는 의미다.

강만수 전 장관은 한국은행의 독립 투쟁을 크게 다섯 시기로 나눴다. 1기는 1950년부터 1962년까지다.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 인사들이 재무부 요직을 차지하면서 재무부가 ‘조선은행의 세종로 출장소’로 불리던 시기다. 한은의 전성시대였다. 2기는 1962년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한국은행이 몰락한 시기였다. 군사정부는 한국은행이 누리던 권한을 빼앗고 재무부 장관에게 모든 권한을 몰아주었다. 3기는 1988년 민주화 운동과 함께 한은의 대반격이 시작된 시기다. 한은은 당시 재무부 장관이 가지고 있던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을 가져오기 위해 100만명 서명 운동을 벌인다. 이런 노력은 은행감독 통합작업이 진행됐던 4기(1995~97년 외환위기 직전)를 거쳐 5기(외환위기 이후 IMF 관리체제)에 비로소 성과를 거둔다. 한은 총재는 이때부터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하게 된다.

한은이 금통위를 장악한 것은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정부와 한은의 신경전은 지속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은 총재에 임명된 이성태 전 총재(2006~10년)는 한은 내에서 강성 ‘매파(물가 목표주의자)’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당시 한덕수 경제부총리(2005~06년)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명박 정부(2008~13년) 때는 한은에 메스를 들이댄다. 내부 출신의 한은 총재가 사사건건 청와대 의중을 거스르자 KDI 출신의 김중수(2010~14년) 전 총재를 임명하게 된다. 김중수 전 총재는 한은 특유의 엘리트 의식을 깨고자 했다. 한은은 서울대 경제학과가 아니면 국장은 물론 팀장조차 하기 어려운 조직이었다. 김 총재는 이것부터 바꿨다. 이 과정에서 한은 내부는 반발했지만, 김 총재의 인사 개혁은 엘리트 의식으로 점철된 한은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이런 한은의 개혁은 진행형이다. 최근 한은은 금융통화위원과 금융시장 간 소통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금통위 제도 개편안을 18년 만에 발표했다. 주요 경제 이슈에 대한 금통위원의 공개 강연, 기자간담회 등이 마련된다. 금통위원의 강연 내용, 일정 등은 홈페이지,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진작에 바뀌어야 했을 부분이다.

금통위원 연봉은 2억6700만원(2014년 기준)이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고액 연봉자들이다. 게다가 한 나라의 기준금리를 정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은 그동안 금통위원이 무엇을 하는 이들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독립성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고액의 연봉만 받아갔던 금통위원들은 이제 한은의 거수기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국가 경제를 망치는 처벌받을 만한 정책적 실기를 한다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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