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수의 책을 펴내온 돌베개출판사 측은 이날 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던 신 석좌교수가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결국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교수는 경제학자로 그리고 인문학자로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실천적 지성인이자 삶의 사색과 성찰에 큰 가르침을 준 우리시대의 큰 스승이었다.
신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교관으로 복무하던 중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8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1·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감형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됐다.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복역한 신 교수는 민주화 이후인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고 1998년 사면, 복권을 받았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중국고전강독 등을 강의한 신교수는 1998년 사면복권 된 날 출간한 책이 20년 수감생활 동안 인간에 대한 이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깊은 사색과 성찰로 드러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글씨를 써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함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우리시대의 명저로 자리 잡았다.
신교수는 이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변방을 찾아서’, ‘담론’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 ‘중국 역대 시가선집’ 등 저작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 사회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실천적 대안 제시, 세계인식에 관한 깊은 시선으로 큰 가르침을 줬다.
교수이자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일명 ‘어깨동무체’로 불린 이른바 ‘신영복체’도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아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의 상표와 기업, 공공기관의 건물 현판 등에 널리 쓰였다.
지난 2006년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해 왔으나, 암 진단을 받은 뒤 그해 겨울 학기를 끝으로 학교를 떠났다. 이후 신 교수는 강연 북콘서트 등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줬다.
지난해 8월19회 만해 문예대상을 수상한 신영복 교수는 “이번의 수상은 나로서는 기쁜 것이기보다는 상처가 되살아나는 아픔이었습니다. 행여 모순의 현장과 아픔의 유역을 비켜가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상을 받기보다는 벌을 받는 것으로 일생을 끝마치려고 하고 있기도 합니다. 벌을 받고 떠나는 삶이 우리 시대의 수많은 비극의 사람들에게 그나마 덜 빚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는 수상소감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신교수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터넷과 SNS에서 추모와 애도, 명복을 비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시대의 최고의 스승이자 세상 어둠을 밝히는 등대같은 존재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지성인이었다. 명복을 빈다” “비록 신영복교수님은 가셨지만 그의 저서와 가르침은 우리의 삶에 지침서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유명인들의 애도도 이어졌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에 “통일혁명당 사건 연루 정도에 비하여 무기징역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그는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고독한 성찰로 들어갔다. 그가 구축한 넒고 깊은 인문의 세계에 우리 모두는 빚지고 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권성우 문학평론가는 페이스북에 “당신의 진심과 겸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역사에 대한 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감옥에 가지마시고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명복을 빌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페이스북을 통해 “선생님은 교수님이란 호칭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훨씬 잘 어울리셨던, 의지의 소중함과 삶의 지혜를 언제나 일깨워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신영복 선생님. 이제는 부디 편히 쉬세요”라며 애도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으신 참 시정인, 신영복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며 "저 편 세상에서는 부디 편히 쉬소서"라는 글을 남겼다.
서해성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자 이전에 점 하나로도 삶이고 우주이고 역사였던 신영복 선생이 가셨다. 선생이여, 저승에도 ‘처음처럼’ 그 글자 획에 취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가 봅니다. 잉크로 붓으로 쓴 모든 글자들이 무릎 꿇어 당신과 여윕니다”며 애도했다.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씨(68)와 아들 지용씨(26)가 있다. 빈소는 성공회대 대성당에 마련되며 발인은 18일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