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일본 골프 탐험] 히메지 골프클럽 제조 공장, 장기 불황 속 뜨거운 겨울

입력 2016-01-19 06:31수정 2016-01-1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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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현 간자키군(神崎郡) 가미가와(神河)에 위치한 조디아골프(ZODIA GOLFㆍ전 지바골프) 공장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장인 지바 후미오(55ㆍ千葉文雄) 씨가 있다. (오상민 기자 golf5@)

신오사카(新大阪)역을 출발한 JR 니시니혼(西日本) 신칸센 히로시마(広島)행 노조미 열차가 20분 만에 히메지(姬路)역에 도착했다. 물 맑기로 유명한 이곳은 효고현(兵庫縣) 남부의 한적한 도시다. 히메지역에서 자동차로 약 20분쯤 달렸을까. 차창 넘어 고즈넉한 시골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반가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일본 골프클럽 발생지, 이치카와(市川)’라고 적힌 안내 간판이다. 잠시 차를 세워 주변을 살펴보니 크고 작은 골프클럽 제조공장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히메지는 일본 골프클럽 제조공장이 밀집한 지역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에서 처음으로 골프클럽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결국 히메지는 일본 골프의 자존심이자 성지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곳 사람들의 골프클럽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것을 입증하듯 히메지의 몇몇 공장과 장인들은 국내외 골프클럽 광고에 단골로 등장한다. 전 세계 골퍼들의 히메지 장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히메지라는 지명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도 골프클럽 영향이 컸다. ‘일본 골프클럽=단조 아이언’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일본인들의 단조 아이언 제조 기술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물론 국내 유명 프로골퍼들이 히메지 장인들을 직접 찾아가 골프클럽 제조를 의뢰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들에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도 ‘남는 장사’라는 손익계산이 있지 않았을까.

▲지바 후미오 씨는 일본을 대표하는 ‘골프영웅’ 이시카와 료(25), 가타야마 신고(43), 아오키 이사오(74) 등의 단조 아이언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으로 생산할 만큼 일본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오상민 기자 golf5@)

▲조디아골프의 최신 모델 지바7 단조 아이언 헤드가 출품을 기다리고 있다. (오상민 기자 golf5@)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장인들의 골프클럽에 대한 열정마저 시들하게 했다. 중국에 거점을 둔 일부 메이저 브랜드들이 대량 생산에 열을 올리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인들의 손길을 외면한 탓이다. 게다가 장기 불황 속 골프 경기의 추락으로 30개 이상이 운영되던 히메지 골프클럽 제조공장은 10여 개 동만이 낡은 방식을 고집하며 명품 클럽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10여 개 골프클럽 제조공장에는 수십 년 경력의 장인들이 저마다의 기술력을 뽐내며 독자적인 명품 클럽을 빚어내고 있다. 기자가 만난 지바 후미오(55ㆍ千葉文雄)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골프영웅’ 이시카와 료(25), 가타야마 신고(43), 아오키 이사오(74) 등의 단조 아이언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으로 생산할 만큼 일본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33년 경력의 골프클럽 장인 지바 씨가 몸담고 있는 곳은 효고현 간자키군(神崎郡) 가미가와(神河)에 위치한 조디아골프(ZODIA GOLFㆍ전 지바골프) 공장이다. 히메지역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다.

조디아는 12개의 별자리를 의미하는 조디악(Zodiac)이 어원으로 12개의 별자리로 통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유쾌한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지바 씨는 조디아골프 공장에서 회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말이 회장이지 그가 맡은 업무는 30년 넘게 쇠를 두드리고 연마하는 일이다.

원래 이 공장은 지바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던 공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아이치현 나고야에 조디아골프를 창업한 미야지 게이스케(47ㆍ宮地啓介) 대표와 손을 잡고 조디아골프 공장으로 재탄생했다.

▲조디아골프의 최신 모델 지바7 단조 아이언 헤드가 페이스 작업을 앞두고 있다. (오상민 기자 golf5@)

▲조디아골프의 최신 모델 지바7 단조 아이언 캐디티 헤드가 CNC 밀링 작업을 마쳤다. (오상민 기자 golf5@)

김포공항에서 간사이(関西)공항까지 비행시간 1시간 45분, 간사이공항에서 신칸센을 타고 히메지역까지 1시간 30분, 그리고 히메지역에서 조디아골프 공장까지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도착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시간을 모두 합하면 8시간가량을 허비한 것 같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곳이지만 기분이 묘했다. 지바 회장의 명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일까. 기자가 생각했던 공장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33년 경력 장인의 손에서 명품이 탄생하는 곳이라기엔 초라했기 때문이다.

간판 하나 없는 낡은 공장 건물을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니 작은 미닫이문이 보였다.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공장으로 들어갈 문이라곤 작은 미닫이문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공장 내부를 들여다보니 아이언 헤드 연마 작업에 한창인 지바 회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그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한편으론 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도 있었다.

사실 이곳은 지금까지 국내 언론에 단 한 차례도 취재(촬영)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뿐 아니라 히메지의 모든 골프클럽 제조공장은 클럽의 제조 공정을 철저하게 비밀로 해왔다. 어설프게 취재 요청을 했다간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이런저런 사정을 잘 알기에 공장 내부를 둘러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지바 후미오 씨는 조디아골프 공장에서 회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말이 회장이지 그가 맡은 일은 쇠를 두드리고 연마하는 작업이다. (오상민 기자 golf5@)

▲지바 회장이 33년째 사용하고 있다는 망치. 지바 회장의 골프클럽 제조 역사이자 조디아골프의 역사를 대변한다. (오상민 기자 golf5@)

그러나 이들이 언론 공개를 허락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듯했다. 중국에서의 대량 생산에 의존하는 일부 브랜드로 인해 장인들의 명성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오랜 경기 침체와 무한 경쟁시대 돌입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제조공정을 유지했다. 그 모든 것은 지바 회장의 명성과 기술력이 입증했다.

골프클럽 제조공정과 공장 내부를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언 헤드의 단련부터 연마, 페이스 스코어라인(그루브) 작업, 완성 단계까지 CNC 밀링 작업을 제외한 모든 공정은 지바 회장의 손을 거치고 있었다. 경력 10년의 히라야마 겐지(48) 씨가 있지만 지바 회장의 일을 돕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 투명한 제조공정을 입증하듯 공장 곳곳엔 지바 회장의 손때 묻은 연장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33년 된 망치는 그의 골프클럽 제조 인생과 조디아골프의 역사를 대변했다.

하지만 모든 공정이 지바 회장의 손을 거치는 만큼 생산해낼 수 있는 물량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아이언 헤드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무려 열흘 전후가 소요된다. 거기에 CNC 밀링 작업과 샤프트, 그립을 장착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나의 아이언이 완성되기까지는 15일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명품이라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 혹독한 현실이다.

▲경력 10년의 히라야마 겐지(48) 씨가 아이언 헤드의 스코어라인(그루브)을 새기기 위해 순번를 적은 노트. (오상민 기자 golf5@)

▲경력 10년의 히라야마 겐지(48) 씨가 아이언 헤드의 스코어라인(그루브)을 새기기 200톤 유압플레스에서 작업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golf5@)

기자의 취재에 동행한 조디아골프 코리아 관계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클럽이 비싸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라며 퇴색돼버린 장인들의 땀과 노력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대량 생산과 장기 불황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단조 수제 클럽이라는 자존심을 어렵사리 지켜내고 있는 히메지의 장인들. 이들은 독자적인 기술력과 열정만으로 메이저 브랜드에 맞서고 있다. ‘골퍼 개개인에게 꼭 맞는 클럽을 제공하겠다’라는 굳은 신념이 이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이들의 손에서 탄생한 클럽이 명품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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