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배려는 비용 아닌 투자…개인기업정부 ‘코워크’ 해야”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회장이 말하는 성공 키워드다. 손병옥 회장은‘국내 최초 여성 금융사 사장’ ‘성공한 여성 최고경영자(CEO)’ 등 화려한 수식어를 가질 수 있었던 비결로 이 세 가지를 꼽았다. 사회와 가정에서 부여되는 다양한 역할을 어떻게 다 소화할 수 있었을까. 이따금 찾아왔을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이야기들을 갖고 있을까. 서울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푸르덴셜생명 사옥 21층 집무실에서 손병옥 회장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부드러운 미소와 온화한 말투를 가진 손 회장에게서는 강하고 터프한 통상적인 CEO의 이미지는 없었다. 일에 대한 열정은 엄청났다. 그래도 결코 일에만 미쳐있진 않다는 그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일하는 것이며 그 행복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행복을 위해 일하라’고 외친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를 조화롭게 가져가야 하는데 무게는 가정에 더 있어야 해요. 가정이 먼저죠. ‘우리 아이들이 제일 중요해. 남편이 가장 중요해’라고 생각해 왔고 이 부분을 아이들도 알아요. 그렇다고 일을 함부로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일할 때는 온 힘을 쏟아 업무에 집중하죠. 인간은 굉장히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일을 다 해낼 수 있어요. 특히 대한민국 여자들은 강하잖아요. 지난해부터 여초라고 합니다. 게다가 대통령도 여성인 나라의 성 격차 지수가 전 세계 117위라니요.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 진출도 많아졌는데 많은 여성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더 분발해서 강하게 나갔으면 좋겠어요.”
주변 사람들은 손병옥 회장을 두고 ‘120년을 살 여자’라고 말한다고 한다. 하루를 남들의 이틀처럼 사는 듯 남다른 열정과 에너지로 바쁜 하루를 산다는 얘기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매 순간 올인했다. ‘내가 하는 일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다’는 끊임없는 주문이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앉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성 리더는 없었어요. 직장에서 여성 최초의 매니저, 최초의 상무, 최초의 부사장, 최초의 CEO까지 오게 되니 여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죠. 40세가 넘어서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갔는데, 그곳에서 칼리 피오리나(전 휴렛팩커드 CEO)를 봤어요. ‘한국에도 피오리나 같은 롤모델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과 함께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내가 사장이 됐을 때 두 가지 결심을 했어요. 첫 번째, 우리 회사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고 싶다. 두 번째, 여성 리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을 깨야겠다. 어깨가 무거웠죠.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손 회장은 자신이 개척해 온 거칠고 험한 길을 후배들이 되풀이해 밟지 않게 하려면 여성을 이끌어주고 대표해줄 여성 관리자들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것이 지속 가능하도록 차세대 여성리더 육성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난 2007년 국내 및 다국적 기업 여성 임원 40여명을 주축으로 위민인이노베이션(Women in Innovation, 이하 WIN)을 설립했다. WIN은 차세대 콘퍼런스, 중간 관리자 육성 프로그램, 지식포럼, 회원 세미나 등을 통해 여성리더로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네트워킹 노하우를 전하고 여성인재양성과 지위향상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용기를 가져라(Be courageous)’ ‘불가능한 꿈을 꿔라(Dream impossible future)’ ‘절대 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up)’, 이 세 가지가 차세대 여성리더, 오늘날의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이 시대는 변화가 많고 혁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실패도 많아요. 그래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거예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그에 따른 실패를 이겨내고 ‘잘 될거야’라는 자신감, 긍정적인 마인드가 각자를 바꿔놓을 겁니다.”
특히 손 회장은 여성들이 일을 중간에 포기하는 것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했고 이는 사회․·경제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여성, 기업, 정부 세 그룹이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 자신이라며 ‘첫 애 낳으면 일 그만둘까?’라고 생각하는 건 가장 먼저 고쳐져야 할 여성들의 태도라고 말했다.
“신입사원은 여성이 40%, 중간 관리자는 6%, 임원은 2%, CEO는 1%가 안돼요. 경력단절때문입니다. 우리 딸도 기회(?)만 있으면 직장 그만둘 생각을 하더군요. 그래서‘넌 왜 첫 애를 낳았는데,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느냐. 어떻게 헤쳐나갈지 방법을 모색해봐’라고 말했어요. 개인과 기업, 정부가 코워크(Co-work: 협력) 해야해요.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나아진 게 느껴지지 않아요. 국가가 경영하는 어린이집이 전체 어린이집의 10%가 안 되니 말이죠.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여성들이 일터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겁니다. 기업은 여성들을 위한 배려를 ‘비용’으로 보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