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스포츠도박이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다.
팽창하는 사이버도박 시장 중에서도 스포츠도박의 비중은 날로 커간다.
사이트 운영자와 도박 행위자 모두 '한탕'을 노리며 스포츠도박에 발을 들이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쉽고, 흔하고, 중독성 높은 도박'이어서 승부내기를 즐기는 젊은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다.'
◇ "돈 쉽게 번다"…운영자·행위자 모두 '착각의 늪'
대학 졸업 후 별다른 직업이 없던 곽모(29)씨는 2013년에 3개월간 도박 사이트 조직원으로 일하면서 '돈 버는 재미'를 들였다.
곽씨는 "스포츠 도박이 돈이 된다"며 어머니 김모(53)씨에게 자금을 요구했고, 김씨는 1억5천만원을 지원했다.
직업이 없던 곽씨 동생(27)과 이모(50)도 '가업'에 가담했다. 친구 여러 명은 서버 관리와 영업을 맡는 대가로 돈을 챙겼다.
곽씨는 수익금을 관리하는 어머니로부터 적게는 월 700만∼800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을 받았고, 동생도 월 400만∼500만원을 받아 외제차를 굴렸다.
이들은 2013년 9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태국·필리핀에 서버를 둔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들에게 도박자금 1천100억원을 받아 75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다른 인터넷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홍보한 배모(27)씨는 불과 10개월 만에 8억원 상당을 챙겼다.
배씨는 2014년 12월부터 작년 9월까지 30여 개의 홍보팀을 운영하면서 인터넷 방송과 SNS에서 회원 수천 명을 모집, 배팅금액의 1.2%를 대가로 받았다.
배씨는 페라리 스포츠카와 스위스산 시계 등 초고가 명품을 사들이며 호화생활을 했다. 그는 경찰에 검거돼 구속됐으나, 주범인 사이트 최상위 운영자는 추적이 쉽지 않은 상태다.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자나 협력자들은 적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불법 사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단기간에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그릇된 욕망 때문이다.
이런 욕망은 도박에 참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설 스포츠토토를 꾸준히 하는 직장인 김모(35)씨는 평균 한 달에 수십만원씩 잃고 있다.
이따금 돈을 딸 때도 있지만, 그 돈 역시 도박에 다시 투입해 결국은 잃고 만다. 수년 동안 배팅액수도 점점 커졌다.
김씨는 "배팅한 게임의 절반만 맞춰도 돈을 딸 텐데, 생각보다 쉽지 않고 결국은 잃게 되더라"면서 "대충 계산해도 지금까지 수천만원을 날렸는데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와 도박의 재미 때문에 끊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스포츠도박에 중독되면 다른 범죄에 빠지기도 쉽다.
서울 강남의 한 골프회원권 거래 중개업체에서 근무하던 박모(33)씨. 그는 스포츠 도박에 빠져 5천만원 가량의 빚을 지게되자 회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게됐다. 2013년 8∼9월 "저렴하게 회원권을 사주겠다"고 속여 회원 7명에게서 4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부산의 한 물류회사 자금관리를 하던 김모(46)씨도 2006년부터 작년까지 운송료를 과다 산정하는 수법으로 2억5천만원을 빼돌렸다가 구속됐다. 김씨 역시 횡령한 돈 대부분을 스포츠도박으로 날렸다.
이달 초 울산에서는 한 중국음식점이 "배달원이 음식값으로 수금한 30만원을 강도에게 빼앗겼다"고 신고했다. 알고 보니 스포츠토토로 30만원을 모두 날린 배달원이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었다.'
◇ 덩치 불리는 스포츠도박…시장 규모 10조원 추정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확대로 불법 사이버도박 시장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간 사이버도박을 단속해 3천429명을 검거했는데,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의 763명보다 349%(2천666명)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스포츠도박 운영자와 행위자가 전체 검거자의 65%를 차지, 사설경마·경륜·경정이나 바카라 등 다른 도박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 규모를 추산하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한 연구가 있지만 지금까지는 대부분 법원 판결문이나 사법기관 수사 사례를 토대로 어림잡은 수준이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암행하는 도박사이트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이트마다 규모 차이가 크고 그마저도 수시로 생겼다가 없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2012년 수행한 '불법도박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전체 불법 사행산업 규모는 75조원인데, 이 중 사설스포츠토토는 7조6천억원으로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는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직접 운영한 운영자 5명을 심층 면접해 국내에서 운영되는 사이트 개수, 매출액에 따른 사이트 규모, 가입자 배팅 규모, 사이트 운영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불법 사행산업 규모가 꾸준히 증가했고, 특히 스포츠도박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스포츠도박 시장 규모가 10조원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사법기관의 단속과 처벌에 한계가 있어 근절하기도 쉽지 않다.
불법 사이트 운영자들은 대부분 중국, 필리핀, 태국 등 외국에 서버를 개설해 사이트를 운영한다.
경찰 등이 이들 사이트를 적발해도 최상위 운영자 등 주범들을 검거하기 어려운 구조다. 서버가 개설된 나라들이 우리나라와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는 등 공조 수사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영업총책이나 인출책 등 도박조직 말단이나 도박 행위자를 적발하는 등 꼬리만 자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차선책으로 처벌을 강화해 도박을 억제하려는 사법기관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법은 지난달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피고인 10명에게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죄를 적용했다. 폭력조직 등에 국한하던 이 혐의를 도박 사이트 운영자에게 적용한 것은 처음이다.
경찰청도 최근 사이버도박 100일 특별단속에서 검거한 15명에게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 쉽고, 게임 많고, 중독성 높아…'도박 입문코스' 역할
스포츠도박이 성행하는 배경은 우선 가장 이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가령 대표적인 사행산업인 경마나 경륜은 경기장이나 화상경마장을 직접 방문해야 하고, 나름의 지식과 분석도 필요하다.
그러나 스포츠도박은 누구나 TV 중계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평소 관심이 많은 스포츠 분야가 있어 배팅할 수 있다.
특히 스포츠와 인터넷에 능숙한 20∼30대 젊은 남성들이 발을 들여놓기에 가장 용이한 도박 형태다.
무엇보다 불법 스포츠도박은 배팅 대상이나 방식이 워낙 다양해 중독성이 강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법 스포츠토토는 국내 프로 스포츠나 해외 주요 리그 경기의 승패 결과나 점수를 맞추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또 배팅할 수 있는 시간과 상한액이 제한되고, 수익의 일정 부분이 공익기금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배당률도 낮은 편이다. 적중했을 때 세금도 부과된다.
반면에 불법 사설 토토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온라인게임인 e스포츠도 대상으로 하고, 배팅 상한액이나 시간제한도 없다. 배당률이 비교적 높고, 돈을 따도 세금 부담이 없다.
심지어 첫 번째 투구의 스트라이크나 볼 여부(야구), 처음 코너킥 하는 팀, 처음 옐로카드를 받는 팀, 첫 골을 넣는 팀(이상 축구), 처음 3점슛에 성공하는 팀(농구) 등 배팅 대상도 무궁무진하다.
성인 인증 절차가 없어서 청소년들도 도박에 빠질 수 있다.
안상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홍보사업과장은 "스포츠도박에 빠진 남성과 상담해보면 자신이 특정 스포츠의 팀, 선수, 전술을 많이 알기 때문에 경기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 분야에서 만큼은 전문가 못지않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쾌락과 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배팅에 적중했을 때뿐 아니라, 아깝게 틀렸을 때도 거의 같은 양으로 분비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이번에 비록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맞출 수 있다는 흥분으로 점점 도박에 중독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두영 울산과학기술원 헬스케어센터장(정신과 전문의)은 21일 "스포츠라는 친숙한 대상이 도박의 매개가 되면서 젊은 남성들이 죄의식 없이 스포츠도박에 빠지기 쉽다"면서 "결국 스포츠도박이 도박을 시작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점점 더 강한 보상을 원하면서 다른 도박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은 "도박 중독은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다른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사례가 많다"면서 "'N포세대'로 지칭되는 젊은이들의 불안이나 팍팍한 삶이 도박에 의존하는 경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