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전통의 일본 전자업체 샤프가 수년간 계속돼온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설립한 지 42년 된 대만 혼하이정밀공업에 넘어갔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가 글로벌 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 녹록지 않은 전자업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궈타이밍 회장은 최근 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세를 넘긴 샤프나 올해로 42세를 맞은 혼하이나 많은 어려움과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혼하이가 100세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샤프와 통합하면 100세가 안고 있는 문제를 알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샤프를 인수한다”고 말한 바 있다.
샤프는 지난 2012년 혼하이와 자본·업무 제휴를 맺고 지분 10%를 넘기면서 1912년 설립 이래 100년간 지켜온 최대 주주의 자리를 외국기업에 내줬다.
샤프는 한때 LCD 산업의 선두주자로서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을 전세계에 보급시키는 등 혁신적인 기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혁신성은 있어도 그것을 지속시킬 만한 뒷심이 약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리스크가 큰 LCD를 개발에서부터 생산까지 일괄하는 ‘수직통합 모델’을 지향했으나 이 모델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회사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혼하이도 세계 최대의 EMS·ODM(설계·제조 수탁)이지만 앞길이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혼하이는 전자기기 생산을 하청받아 급성장해 세계 최대 EMS(전자기기 수탁 제조 서비스) 업체로 성공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저가 전략이 먹혔지만 최근에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윤이 떨어졌다. 여기다 혼하이는 미국 애플의 스마트폰 수탁 생산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수요가 둔화하고 있어 수익 다각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EMS·ODM 전통 업무, 즉 완제품 조립 자체로 이익을 내기는 거의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대만 EMS·ODM 기업들은 AV 기기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백색 가전 사업을 우습게 여겼는데, IoT가 대두되면서 백색 가전 시장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LCD나 백색 가전 등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보유한 샤프를 인수함으로써 삼성전자 등과 가전 분야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샤프는 냉장고와 에어컨에서만 2015년도에 160억 엔 정도의 매출을 기록했다. 혼하이는 이 경영 자원을 다른 브랜드 기업에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혼하이가 일본 민관투자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인수 경쟁을 벌이면서 과도한 금액을 주고 샤프를 인수하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혼하이는 샤프에 7000억 엔(약 7조7167억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하고 인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혼하이는 무엇보다 카메라 모듈 사업에서 샤프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샤프는 애플을 주요 고객으로 카메라 모듈 사업에서 2015년도에 400억 엔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양산 기술과 지리적 이점이다. 애플은 이미지 센서를 소니에서, 렌즈를 일본 간타쓰에서 조달하고 있다.
혼하이는 중국 산시성 진청시에서 렌즈 제조를 포함해 5년 넘게 카메라 모듈 사업 확장에 노력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에 샤프의 강점과 자사의 조립 사업을 통합하면 설계 및 생산 단계가 줄어 고객 확보에 유리하게 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또한 혼하이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기업과 중국 정부를 등에 업고 질주하는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 3의 경영 통합을 염두에 두고 이번 인수를 추진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궈타이밍 혼하이 회장이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만 LCD 패널 제조업체인 AUO와 산하 Innolux, 샤프의 중소형 디스플레이 등 3자 간 사업 통합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궈 회장의 개인 자산은 56억 달러(포브스 추산)인데, 이는 샤프를 주식공개매입(TOB)하고도 남을 금액이라고 한다. 궈 회장은 사재를 털어 샤프의 LCD 부문을 스핀오프한 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편 궈 회장은 ‘샤프’ 브랜드는 유지할 방침이며, 고용도 승계할 방침이나 구체적인 구조조정안은 향후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