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자른 머리에 얄팍한 안경테, 날카로운 눈매에 굳게 다문 입술, 줄무늬 셔츠에 검은색 재킷. 좀처럼 편하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강한 인상. 그는 일본의 샤프트 전문기업 FSP의 고바야시 미쓰아키(72ㆍ小林光昭) 회장이다.
그를 만난 곳은 도쿄(東京) 유라쿠초(有楽町) 인근의 페닌슐라호텔이다. 그는 호텔 1층 로비 커피숍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평생을 독자적인 기술력만으로 인정받아온 그다. 메이저 브랜드와의 처절한 경쟁 속에서 그만한 근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고바야시 회장은 없었을 일이다.
그는 낚시 브랜드 올림픽의 창업주로 한때 일본 낚시용품시장을 주름잡았다. 그의 기술력은 카본 소재의 활용에 있었다. 그 독자적 기술력은 골프클럽 카본 헤드와 샤프트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회사가 지금의 FSP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던 해 창업해 올해로 28년째다. 본사와 공장은 사이타마현(埼玉県) 이루마시(入間市) 미야데라(宮寺)라는 곳에 있다. 지금은 아들 요시히로(44ㆍ義浩) 씨가 대표이사로서 가업을 물려받았다.
FSP 샤프트의 특징은 고집스러운 핸드 메이드다.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 만들어지는 만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5축 샤프트가 특징이다. 샤프트 변형이나 뒤틀림을 방지해 방향성을 좋게 하는 것이 장점이란다. 혼마골프를 시작으로 브리지스톤, 맥그리거, PRGR(프로기아) 등 메이저 브랜드가 FSP로부터 샤프트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제작했을 만큼 그의 기술력은 탁월하다.
최근에는 클럽 소재ㆍ개발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샤프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고바야시 회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샤프트가 좋다고 클럽 성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골프클럽은 헤드와 샤프트와 그립으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좋은 샤프트를 장착했다고 클럽 성능이 좋아진다는 건 잘못된 말이다.”
클럽 헤드와 샤프트의 궁합에 대해서도 남들과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골프 매거진을 보면 프로골퍼가 클럽 시타 후 헤드와 샤프트의 궁합에 대해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뢰할 수 없다. 단지 그 프로골퍼에게 맞는 상성일 뿐이다. 사람마다 스윙 스피드와 체형, 취향이 다른데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궁합은 나올 수 없다.”
그보다 지역 잔디 특성에 맞는 샤프트를 개발해야 한다는 게 고바야시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간사이(関西)와 홋카이도(北海道) 잔디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녔다. 홋카이도 지역 잔디는 대체로 누워있는 것이 특징이어서 공이 러프에 잠기는 일이 많다. 잔디와 함께 공을 쳐내야 하는 만큼 샤프트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고바야시 회장의 말에는 힘이 느껴졌다. 중저음으로 낮게 깔려 전해지는 음성 때문일까. 그보다 자신이 가진 기술력과 노하우에 대한 확신 때문인 듯하다.
그는 식사 중에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화제를 한국으로 돌렸다. 그는 제법 한국과의 인연이 깊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이병철 회장(1910년~1987ㆍ삼성 창업주)의 샤프트를 제작한 일이 있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35~36년 전쯤 된 거 같다. 고탄성이지만 일반 샤프트보다 얇게 제작한 샤프트에 삼성 로고를 새겨서 보낸 적이 있는데, 측근으로부터 ‘회장께서 대단히 만족해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병철 회장이 쓴 저서를 읽은 적이 있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당시 나는 기술자였지만 비즈니스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책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뀐 것 같다.”
그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좋은 소재를 사용해 더 훌륭한 샤프트를 만드는 일이다. ‘좋은 샤프트는 어떤 샤프트냐’는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헤드와의 상성이 잘 맞는 샤프트가 좋은 샤프트다.” 그는 결코 샤프트 성능을 과대 포장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좋은 샤프트가 반드시 높은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쩔 땐 실패작이라고 생각한 제품이 오히려 더 높은 매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웃음)”
그러면서 또 하나의 목표를 밝혔다. 지금의 유저들로부터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싶단다. “무리하게 유저를 늘릴 생각은 없다.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유저들에게 더 만족감을 주는 게 우선이다. 노력한 만큼, 내가 가진 기술력만큼만 인정받고 싶다. 지금의 유저들로부터 최고로 인정받는 게 내 생애 최고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