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혐의를 잡고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현대그룹에 대한 공정위 제재가 확정되면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이 지난해 2월 발효된 후 처음 적용되는 사례가 된다.
공정위는 21일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가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고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금지조항을 어겼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쉽게 얘기하면 조사 결과 이런 혐의가 확인됐으니 의견을 내라는 내용이 담긴 통보장이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현대로지스틱스 사무실과 여의도의 현대증권에서 현장조사를 벌였고 최근 2년간의 현대그룹 계열사 내부거래 자료를 다수 확보해 분석작업을 벌여왔다.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총수가 있는 대기업이면서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인 대기업의 내부 거래액이 연 200억원을 넘거나 연 매출액의 12%를 넘는 경우면 대상에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매제(妹弟)가 보유한 회사 두 곳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현대증권이 지점용 복사기를 임차 거래하면서 현대그룹 계열사인 에이치에스티를 거래 단계에 추가해 이 회사가 중간 수수료인 ‘통행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에이치에스티가 부당이득을 취하도록 한 것이다.
에이치에스티는 현 회장 제부인 변찬중씨가 지분 80%를 보유한 회사로 오너 일가 지분 보유율도 95%에 달한다.
이 회사의 2014년 기준 매출액은 99억5600만원으로, 이 중 현대엘리베이터(11억8400만원), 현대유엔아이(8억9200만원), 현대증권(41억2300만원) 등 계열사와의 거래에서만 69억88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공정위는 또 현대로지스틱스가 택배송장용지 납품업체인 쓰리비에 다른 경쟁 택배회사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가격을 지급하는 식으로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줬다고 보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 역시 변찬중(40%)씨를 포함해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운송지원업체 쓰리비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쓰리비는 2014년 매출액이 34억8900만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32억8300만원이 현대로지스틱스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사실상 매출액의 대부분이 그룹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나온 셈이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현대그룹의 재무 악화로 지난해 초 롯데그룹에 매각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혐의가 발생한 시점에는 현대그룹 소유였기 때문에 처분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2~3주간의 의견 제출 기간이 끝나고 이르면 다음 달 전원회의를 열어 제재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혐의가 확정되면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로 거둔 부당 매출의 5% 해당하는 액수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총수 또는 총수 일가가 일감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지시를 하거나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한편 공정위는 현대그룹 외에도 한진, 하이트진로, 한화, CJ 등 4개 그룹에 대해서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포착해 조사 중이며, 순차적으로 발표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