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품이 최고…실패할지언정 의심은 않는다”
인생은, 아니 하루의 삶조차 굴곡의 연속인데 어떻게 언제나 기운 펄펄 나고, 하는 일은 다 잘 될 것 같이 의욕이 있겠는가 말이다. 굴곡 따라 감정도, 때론 이성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우리네 일상. ‘나인투식스(9 to 6)’ 규칙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보다는 스타트업에 도전한 이들이 아마 이런 굴곡을 더 많이 겪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들어져 있는 기업 안에 있는게 아니라 기업을 만들고 성장, 유지시켜야 하니까.
김주리 CTL(www.officiser.com)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한창 CTL의 주력 상품인 스마트 사무 건강 관리기기 오피사이저를 가지고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플랫폼인 킥스타터(Kickstarter)에서 한창 펀딩 중일 때였다. 아무래도 열정과 기대가 더 많이 읽혀졌다. 몇 개월 후 다시 만난 날, 여전히 눈은 반짝반짝했지만 아쉬움과 불안감도 어려 있었다. 계곡을 한 번 힘겹게 넘어온 느낌이랄까. 킥스타터에서 세웠던 목표 금액을 다 모으지 못했고 그래서 패인을 분석하고 방향 설정을 새로 해야 하는 때였기에 눈빛은 달라보였던 것 같다.
“실패했죠. 하지만 제가 목표로 했던 금액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절망만 한 건 아니에요. 정말 많이 배웠거든요. 수업료를 너무 많이 내야했던 것이 힘들었지만요.”
오피사이저는 언뜻 보기에 운동기기 스테퍼(Stepper)를 닮았다. 그런데 힘들게 밟으며 운동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무실 책상 발 밑에 두고 두 발을 얹어두기만 하면 운동이 되는 기기다. 발을 얹어 놓으면 페달이 자동으로 위아래는 물론 입체적으로 회전하면서 발과 발목, 종아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해 준다.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겠거니 정도 생각하면 오산. 칼로리까지도 상상 이상으로 소모해준다. 그런데 힘이 들지 않는다. 전기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리와 발을 얹어두면 끝. 오래 앉아서 일해야 하는 사무 환경에선 반갑고, 똑똑한 운동 기기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이란 제품이나 서비스,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서 당연히 투자를 받는 시스템이 아니다. 홍보와 마케팅, 또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초기 투자들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더 많이 노출되고 주목받으면서 투자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 대표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감을 가장 큰 패인으로 분석했다. 좋은 제품, 새로운 시장에 대한 투자는 알아서 될 것이라 생각하고 마케팅 등 소문 내기에 애를 쓰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히려 존재감이 묻혀버렸던 것이다. 목표액은 8만5000 호주달러로였는데 20%도 못 미친 1만5000 호주달러 가량밖에 모이지 않았다. 맥이 빠졌다. 시장에 존재를 알리고 양산 비용도 모아보자던 계획은 무너졌다.
“그런데 얻은 것도 많아요. 일단 킥스타터에서 어떻게 해야 추천도 많이 받고 펀딩도 잘 할 수 있는 지를 알았죠. 그리고 우리 제품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을 분석해 봤는데 짐작과는 많이 달랐어요. 저희는 당연히 다리 붓는 것에 더 예민한 여성 직장인일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30대 남성 정보기술(IT) 업종 관계자, 특히 프로그래머들이 많았어요. 킥스타터라는 플랫폼도 알고, 신제품에 관심이 많은 얼리 어답터가 이들 중에 더 많았던 거죠. 프로그래머들이야말로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잖아요. 그래서 이 제품을 반가워들 했어요. 응원도 조언도 많이 들었죠. 그러나 조언을 제대로 반영한게 맞느냐며 쓴소리를 한 사람도, 중도에 후원을 취소한 사람도 있었죠. 다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런 수요 예측을 따로 어떻게 했겠어요. ”
이미 해외에선 사무공간이나 심지어 학교 교실에까지 서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스탠딩 가구가 들어오고 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간은 3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현대인들은 매우 적게 움직이고 그 시간을 거의 앉아 있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 TV를 보는 시간, 또 집에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11시간 이상이나 된다. 이렇게 앉아만 있으면 일단 소화도 잘 안 되고 몸이 찌뿌드드하게 마련. 캐나다 토론토 재생 재단의 데이비드 올터 교수 등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자리에 앉는 즉시 칼로리 소모가 감소하고 2시간 후면 기초대사량이 25~50% 줄어들며 시간이 더 지나면 몸 속의 지방이 엉덩이나 허벅지 등에 추가 축적되는 것으로 연구됐다. 심혈계 질병과 허리 및 관절 통증, 하지정맥류, 당뇨 등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져 결국은 사망 위험도 높인다.
김 대표는 “종아리 근육은 ‘제 2의 심장’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 몸 순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종아리 근육만 써주면 혈액이 심장으로 잘 흐르게 되거든요. 오피사이저는 바로 그걸 도와주는 기기입니다.”
지금은 오피사이저 기능 향상과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대비에 한창이다. 레일을 더 유연한 것으로 바꿨고 센서를 부착해 애플리케이션과 연동, 사용자가 물을 마셔야 할 때, 일어나야 할 때 등을 알리는 관리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또 페달을 이용해 마우스를 움직여 손목터널증후군까지 예방하는 기능도 연구 중이다.
김 대표가 창업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학 졸업후 그가 시작한 건 에콰도르 장미를 수입, 유통하는 사업이었다. 어린 시절 8년간 중남미에 거주해 알게 된 현지 친구가 에콰도르 장미를 소개해줬고 길어야 일주일도 못 가는 일반 장미에 비해 한 달까지도 가는 에콰도르 장미는 크기도 크고 화려해 시장성이 있다 싶었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이 사업은 쉽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과를 못 거둔 것도 아니었다. 화훼 유통상인들의 텃세와 로비로 통관이 늦게 되어 한 달만에 겨우 받은 장미들을 밤을 새며 생생한 것만 골라 다음 날 납품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금융위기까지 닥쳐 정부가 내수 산업을 보호하기 시작하자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외국계 기업을 거쳐 LG CNS에서 해외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하우면서 그는 해외에서는 이미 ‘웰니스 IT 산업’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특히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제품에 관심이 생겼다. 앉아서도 운동할 수 있고, 힘들지 않아서 계속 할 수 있는게 어떤 걸까 고민한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모아 2008년 특허 등록부터 했다. 해외에도 비슷한 제품들이 있다. 그러나 앱과의 연동이 불가능하다거나 모터로 운동을 시켜주는 등 조금씩 기능이 다르다. 이 제품들이 비싼 가격에도 팔리는 것을 본 김 대표는 사표를 냈다. 시장이 더 형성되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 겠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작년 말 법인 설립 후 본격적인 도전장이었던 크라우드 펀딩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시도해 보거나 다른 방법도 찾아보려 한다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최근 개봉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조이>가 떠올랐다. 철없는 부모님, 이혼 후에도 자신에게 기대며 살고 있는 전 남편, 아이들을 모두 부양하며 삶에 찌들리지만 세상을 바꿀 물건을 만들겠다는 어린시절 꿈을 잃지 않았던 조이는 우연히 획기적인 대걸레를 발명하게 된다. 조이의 출발은 하나도 순조롭지 못했지만 자신을 믿고 용기를 잃지 않은 그에게 하늘은 응답해준다. 조이에겐 믿고 응원해준 어린시절부터의 친구 재키가 있는 것처럼 김 대표에게는 대학시절 만난 친구 차승현 기획실장이 함께 있다.
“스타트업에 정부의 지원 정책과 벤처캐피탈 투자도 많이 이뤄지지만 제조 분야가 외면당하고 있는게 안타까워요. 저희는 제조 스타트업입니다. 우리의 도전과 개척은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는 있을 겁니다. 직장 웰니스 문화가 자리잡고 산업이 크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실패로 인해 더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됐어요. 저 같은 후배에게 나중에 실패담도 웃으며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