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기획취재팀장
“나도 마찬가지!”란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다. 아직 초등학생인 딸도 늘 “시간이 너무 없다”고 징징댄다.
이렇게 시간이 부족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잠을 줄이는 것이다. 단기적이라면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만성이 되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육체의 피로는 분노와 짜증의 비등점도 급격하게 낮춘다.
이렇게 생긴 누적된 피로를 주체하지 못해 만성피로클리닉이란 곳에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만성피로증후군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명확한 치료법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저 증후군을 의학적으로 증명해 내기 위한 ‘모르모트’가 될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클리닉을 나와 다시는 가지 않았다.
‘주말에 몰아 자기’는 실천해볼 수 있는데 효과가 별로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경험상으로도 그렇다. 반면 잠은 적게 자도 달게 자면 된다. 어딘가에 머리만 닿으면 잔다는 사람이 정말 부럽다. 잠에서 자주 깨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두통이나 현기증 같은 건 일상적이고, 면역력도 약해져 병원에 가는 날이 많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래서 잠을 충분히 자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자고 다짐하지만 경쟁의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리다 보면 절대로 쉽지 않다.
이런 나에게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이 최근 낸 ‘수면 혁명(The Sleep Revolution)’이란 책은 단연 눈에 띄었다. 성취욕이 높아 일로 늘 돌아다니기 바쁜 젯셋(jet-set)족일 것 같은 허핑턴이 어떻게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해졌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허핑턴은 지난 2007년 사무실에서 쓰러져 턱뼈가 골절됐고 눈 위를 꿰매야 했다. 자신이 하루 18시간,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해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삶과 일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라고.
이제는 자신을 ‘수면 전도사(sleep evangelist)’라 칭하는 그는 우리에겐 충분히 잘 권리가 있고, 따라서 일터에서도 당당하게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태도의 변화, 즉 수면 혁명을 주장한다. 자신도 뉴욕 사무실에서 틈틈이 토막잠을 잔다. 사원들에게도 피곤하면 자라고 한다. 사무실에 수면 공간(sleep pod)이 갖춰져 있다. 허핑턴은 말한다. “수면 부족은 결국 생산성을 해쳐 더 많은 비용을 들게 할 것”이라면서 “회의실만큼 수면실도 보편적이 되어야 한다”고.
허핑턴은 최근 뉴욕의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무료로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나섰다( https://www.airbnb.co.kr/night-at/arianna-huffington). 에어비앤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자본가의 잉여가치 창출에 기여하려고 몸 바쳐 일해봤자 그 보상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던 칼 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가 떠오른다.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란 책을 썼다. 성실한 노동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프로테스탄티즘 노동윤리는 우리를 끝도 없는 노동에 내몬다며 우려했다. 여기에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로봇이 곧 “인간은 필요없다”고 외칠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돌아보며 일해야 하지 않을까. 소진되고 쓰러지면 난분분하게 날리는 봄 꽃잎들의 아름다움도, 가수 장기하의 노랫말에서처럼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보고 지나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