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흰색 머릿수건이 눈에 띄네요. 히잡의 일종인 ‘루사리’라는 건데요. 이슬람교 율법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착용했다고 합니다. 방문 첫날과 이튿날 착용한 녹색과 분홍색 재킷 역시 이란 국기를 표현한 거라 하네요. 진정한 패션 외교입니다.
“왜 이란이지?”
기사를 보며 이런 생각하셨을 겁니다. 박 대통령이 ‘루사리’까지 두르고 54년 만에 이란 땅을 밟은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당시 이란은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경고도 무시할 정도로 요주의 국가였죠.
국제 안전을 우려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12월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국제사회 교류 중단과 해외 금융자산 동결(113조9300억원 규모)이 담긴 제재안이었습니다. 손발이 묶인 이란 경제는 휘청이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에는 마이너스 성장에 빠지기도 했죠. 버티다 못 한 이란 정부는 결국 지난해 안보리와 핵 협상을 맺고 올해 초 IAEA로부터 ‘협상안이 이행됐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중동의 마지막 블루오션’ 빗장이 열린 겁니다.
중동 2위의 경제 대국.
이란이 갖고 있는 타이틀입니다.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죠. 천연가스 매장량은 1위입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가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검은 황금’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죠.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란이 연평균 6%의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42,000,000,000,000원.
박근혜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 성과입니다. 읽기 버거우시죠? 42조원입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국내 건설사들입니다. 대림산업은 댐, 발전 플랜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계약을 따내 총 100억 달러(약 11조3900억원)가 넘는 수주 잭팟을 터트렸습니다. 현대건설도 철도, 정유시설 등에서 43억 달러(약 4조9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고요. 대우건설 역시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짜리 고속도로 건설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수주 가뭄에서 벗어났습니다.
서슬 퍼런 칼바람 앞에 서 있는 조선사들도 오랜만에 미소를 짓고 있네요. 섬에 놀러 갈 때 여객선 타시죠? 컨테이너 잔뜩 쌓고 운항하는 화물선도 보신 적 있으실 테고요. 그런 걸 상선이라고 하는데요. 이란에 상선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가 한국입니다. 현대중공업(19척)과 대우조선해양(18척)은 이란 국영선사인 NITC에 20척에 가까운 유조선을 인도했죠. 이란의 천연가스 수출이 늘어나면 LNG선 발주도 우리에게 맡길 가능성이 큽니다.
보건 의료분에서도 수혜가 기대됩니다. 우리나라가 의료 강국이지 않습니까. 우선 17억 달러(약 1조9300억원) 규모의 병원 건설사업이 추진되고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도 수출됩니다. 중소기업 낭보가 들려오네요. 어제(2일, 현지시간) 열린 한 이란 일대일 비즈니스 상담회에서 임플란트 전문기업인 덴티스는 5000만 달러(약 569억3500만원) 규모의 MOU를 맺었습니다.
이 장면 기억나십니까? 2년 전 큰 인기를 끈 tvN ‘미생’의 한 장면입니다. 오상식 차장(이성민 분)과 장그래 사원(임시완 분)이 중고차 계약을 따기 위해 요르단을 찾은 내용이죠. 대기업 ‘원인터’를 나와 ‘이상네트워크’에서 다시 뭉친 이들에게 중동은 ‘기회의 상징’이었습니다. 수주 가뭄에 목말라 있는 우리에게 이란의 가치도 오 차장의 그것과 다르지 않겠죠. 박 대통령의 ‘흰색 루사리’가 수주 가뭄을 겪고 있는 국내 업체들에게 ‘기회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