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점이 없어요, 아이패드 프로 9.7 사용기

입력 2016-05-0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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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이패드 프로를 뜯어보겠어요. 12.9인치 말고 새로 나온 9.7인치 아이패드 프로 말이에요.

전 12.9인치의 1세대 아이패드 프로를 꽤 오래 사용했어요. 그리고 제법 잘 활용하는 편이었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Procreate 앱을 늘상 띄워놓고 다녔으며, 외부에서 기사 마감을 해야할 땐 스마트 키보드의 힘을 빌렸어요. 좋은 시절이었지만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았어요. 일단 전 상당히 연약(!)하고, 작고 예쁜 가방을 좋아하는데 아이패드 프로는 정말이지 너무 컸죠. 애플펜슬과 더불어 캔버스로서 사용할 땐 좋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선 늘 절 괴롭혔어요. 굉장히 무거운 편도 아닌데 면적이 넓다보니 수납할 수 있는 가방도 썩 많지 않고, 손에 들고 다니기도 애매했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9.7인치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자, 상상했던 그 제품이에요. 이름은 그대로 ‘아이패드 프로’죠. 더 강력해진 에어가 아니라 몸집을 줄인 프로란 얘기에요.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오며 크기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가장 큰 변화는 눈 앞에 보이는 이 ‘디스플레이’에 있어요. 2048×1536 해상도에 숨은 이야기를 먼저 살펴볼까요.

아이패드 에어2부터 느낀거지만 애플이 최근 아이패드 시리즈에 기술력을 ‘몰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번 신제품의 디스플레이에서도 그런 느낌이 낭낭하죠.

일단 밝아졌습니다. 여태까지 만들었던 iOS 기기 중 가장 밝은 500nit의 최대 밝기를 구현했죠. 숫자로 비교해보자면 기존 제품보다 25% 더 밝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잖아요. 이렇게 숫자로 말하면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걸. 기회가 되시면 가까운 매장에서 한번 체험해보세요. 역대 어떤 iOS 기기보다 야외 시인성이 뛰어납니다. 즐거운 일이죠. 한밤중엔 최대 밝기로 해놓으면 눈이 시릴 정도에요.

밝기를 올렸다고 하면 늘상 우리 마음 속에 찾아오는 두려움이 있죠. 배터리! 이 환한 9.7인치 화면이 배터리 잡아먹는 귀신은 아닐까? 부들부들.

다행히도 애플은 500nit의 휘도에도 불구하고 배터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픽셀과 픽셀 사이에 미세하게 자리하고 있는 블랙마스크의 두께를 줄여 배터리 시간을 손해보지 않고 더 밝은 화면을 만들 수 있었던거죠. 물론 말 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 섬세한 생산 공정이 요구되는 일이죠.

단순히 밝아진 것 뿐만 아니라 색상표현력도 늘었습니다. 지원하는 색영역이 넓어졌다는 뜻인데요, sRGB보다 25% 더 풍부한 색표현이 가능한 P3 기반의 색영역을 지원합니다. 5K 아이맥과 같은 수준이라고 보면 쉽겠네요. 덕분에 고해상도 이미지를 표현할 때 보다 더 육안에 가까운 컬러를 제공합니다. 똑같은 풀잎 사진을 띄우더라도 색을 고를 수 있는 컬러 팔레트가 훨씬 넓어졌으니 섬세한 색 표현이 가능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이제 프로 수준의 고급 장비로 촬영한 사진도 아이패드 프로 9.7인치 화면에서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디스플레이의 향상은 막상 “헉!”하고 체감하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의 하이라이트라고 평가하는 기능 ‘트루톤 디스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단 어떤 기능인지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재밌죠. 아이패드 설정 단계에서부터 조금 달라진 걸 느낄 수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트루톤 디스플레이가 활성화 되어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의 색상을 인식하고 눈이 가장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화면 톤을 연출해주는 기능입니다. 야외에서 트루톤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하고 화면을 보면 조금 더 따뜻한 색온도의 화면이 연출됩니다. 화면 속 컬러가 틀어질 정도의 변화는 아니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변화입니다. 빛의 강도는 물론 주변 조명 색에 따라 가장 알맞은 화면을 연출해주는 ‘맞춤형 디스플레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애플이 ‘전자책’의 영역도 욕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죠. 모든 종이를 이 화면으로 대체하겠다는 야망이랄까요. 너무 눈이 시리거나 눈 부시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면 속 글자를 읽어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원리입니다. iOS 업데이트 이후로 잘 써먹고 있는 ‘나이트 쉬프트’ 모드와 ‘트루톤 디스플레이’를 동시에 켜 놓으면, 한밤중에 어둑한 방 안에서 비교적 눈에 덜 피곤한 상태로 화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밤중엔 아이패드를 보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 게 더 좋겠지만요. 맥에도 어서 도입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디스플레이는 솔직히 흠잡을 구석이 없습니다. 너무 칭찬하는 거 아니냐구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 제품의 화면에는 약점이 없어요.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완벽합니다. 아이패드의 가격 책정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100만원 미만의 기기에 이 정도 디스플레이가 달려있다는 건 반칙과도 같은 일입니다. 최고의 화면이 아이패드 프로 9.7인치의 또 다른 이름표라고 생각되네요.

그 밖의 것들은 대체로 아이패드 프로 1세대와 동일합니다. 4방향 스피커는 12.9인치보다는 볼륨이 떨어질 지언정, 여전히 끝내주는 사운드를 냅니다. 입체적이고 몰입감이 뛰어나죠. 같은 게임이라도 아이패드 프로로 즐겨보세요. 완전 다릅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말 할 필요도 없죠. 이걸로 보다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미니로 영상을 보면 오징어처럼 납작한 사운드에 눈물이 또르르…

카메라 성능도 아이폰6s와 동일한 수준입니다. 사진은 아주 잘 나오죠? 끝내주는 카메라이긴 한데, 사실 전 태블릿에 이렇게까지 고성능 카메라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사진은 보통 아이폰으로 찍지 않나요?

아, 모두가 염려하는 카툭튀도 언급해야겠죠. 네, 툭 튀어나와있습니다. 썩 기쁜 일은 아니에요. 실제로 보면 더 불안해 보이구요. 하지만 바닥에 놓고 사용했을 때 덜그럭거리지 않고 단단하게 지지되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카툭튀인데 왜 안흔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세요. 정말 안흔들려요. 으음.

애플펜슬과 스마트키보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아이패드 프로 시리즈만의 전용 액세서리니까요. 12.9인치에서는 애플펜슬의 구입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애플펜슬을 활용할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12.9인치의 크고 아름다운 캔버스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구요. 하지만 9.7인치 화면이라면 애플펜슬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은 그냥 아이패드 자체로만 사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 펜슬을 좋아하니까 낙서 한 장 남겨봅니다. 12.9인치 아이패드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필기감입니다. 여전하네요.

스마트키보드는 솔직히 조금 아쉬웠습니다. 직관성이 떨어지는 1세대 키보드의 구조를 그대로 적용한 것도 아쉽구요. PC를 대체하려는 욕심이 생겼다면 거치 각도에 대해서도 고민이 더 따라야 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키보드 자체의 크기가 줄어든 만큼 타이핑의 편안함도 줄어들었습니다. 적응 못할 정도는 아니고, 여전히 시중의 블루투스 키보드 보다는 완성도 높은 마감을 보여주지만 전작에 비해서는 만족스럽지 않네요.

이제 9.7인치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볼 차례인 것 같습니다. 9.7인치. 오리지널 아이패드의 화면 크기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태블릿의 사이즈죠. 흥행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는 사이즈란 뜻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아이패드 프로라는 제품이 놓인 정체성의 고민이 크게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아티스트의 도구, PC의 대체품, 가장 디지털화된 캔버스, 생산성. 이런 수식어가 없어도 9.7인치 아이패드가 설 곳은 충분하니까요.

휴대성에 대한 부담도 해소된 만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PC의 대체품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겠지만요. 사실 제 윈도우 PC가 두 달 전에 운명해서 회사 PC 외에는 아이패드로 대부분의 작업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염려하는 워드 등의 문서 작업은 의외로 아무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오랫동안 앓는 이처럼 가져온 애플 제품과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간의 불협화음은 거의 해결된 지 오래니까요. 영상물 감상 용도로는 PC보다 접근성도 훨씬 좋고 쾌적합니다. 침대에서나 화장실에서나 넷플릭스와 이별할 필요가 없죠. 사실 얼마전 하늘나라로 떠난 제 노트북보다 아이패드 프로의 디스플레이나 퍼포먼스가 훨씬 뛰어난 것도 사실이구요.

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프로를 비롯해 태블릿의 성능과 입력장치는 놀라운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성능적인 진화만으로 모바일 OS를 품은 기기가 PC를 대체하게 된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죠. 성능만으로 따진다면 프로급 PC를 능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기기의 진화와 더불어 우리가 PC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오직 PC’로만 할 수 있었던 작업들을 보다 더 쉽고 가벼운 프로그램(앱)을 통해 뚝딱 해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금융업무나 문서작업, 심지어 동영상 편집이나 사진 보정까지. 모바일 기기가 엉덩이를 드밀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광범위 합니다. PC 프로그램과 100% 같은 수준을 제공하느냐 하면 경우에 따라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섬세하고 가장 고도화된 작업에는 반드시 고성능 PC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어떨까요? 제가 PC로 하는 작업은 그리 하드코어하지 않습니다. 미드를 보고, 쇼핑을 하고, 기사를 쓰며 경우에 따라 직접 사진 보정 작업이나 짤막한 영상 클립을 이어 붙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제 기준에선 아이패드 앱을 통해 작업하는 게 더 쉬울 때가 많습니다. 어차피 제가 디자이너만큼 복잡한 포토샵 툴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그래픽이 들어간 영상을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경화의 영역’에서는 아이패드 프로가 PC를 일부 대체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에요. 물론, 때때로 창을 스무개쯤 띄우고 작업하는 PC의 멀티태스킹이 그리워지겠지만요. 섣부른 결론은 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더 여러가지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신중해야겠죠. 아이패드 프로의 가격이면 어지간한 윈도우 노트북도 구입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기회비용이 더 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 판가름날 것이구요.

어쨌든 약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9.7인치 아이패드 프로를 만나봤습니다. 아이패드에 대한 제 생각은 한결같습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제품은 아닐지 몰라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이죠. 수많은 경쟁작이 등장했음에도 이보다 더 좋은 태블릿은 아직 없다는 걸 오늘의 아이패드 프로가 증명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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