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문학수도’ 건립, 문학적으로

입력 2016-05-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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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꼴도 보기 싫은 19대 국회의원들은 4년 내내 놀고먹고 싸웠지만, 지난해 말 문학진흥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은 잘했다고 칭찬할 만하다. 이 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년마다 문학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우리 문학자산을 수집·전시·연구·활용하고 교육시설로 쓸 수 있는 국립한국문학관을 설립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지자체가 개별 문인을 기리거나 개인이 운영하는 문학관은 있지만 한국문학의 전모를 훑어볼 수 있는 종합문학박물관은 아직 없다. 일본의 경우 도쿄 올림픽(1964년) 이후 자료를 대대적으로 모아 1967년 4월 도쿄 한복판에 일본근대문학관을 열었다. 중국은 1985년 베이징에 문을 연 현대문학관을 세계에서 가장 큰 문학박물관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이달 초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위한 행정절차에 시동을 건 것은 늦어도 한참 늦은 일이다. 문화부가 발표한 일정은 이달 25일까지 우선협상대상자 후보를 공모한 뒤 평가위원회를 통해 6월까지 한 군데를 선정하고, 내년 상반기 안에 기본계획 수립과 설계작업을 거쳐 2018년에 착공해 2020년 하반기 개관하는 것이다.

지자체들의 유치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국비 450억 원이 투입되는 큰 사업인 데다 각종 문화행사와 연계할 수 있고 관광수입도 올릴 수 있는 호재여서 지자체마다 지역의 문학적 특성을 내세워 유치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 은평구는 문학관 유치와 함께 문인마을과 언론기념관이 어우러진 문학테마파크를 구상하고 있다. 출판문화산업단지가 있는 경기 파주시는 ‘출판 도시’를 내세우고, 군포시는 2014년 정부가 지정한 ‘제1호 책의 도시’라는 점을 앞세운다. 충북 청주시는 ‘금속활자의 발생지’이며 명심보감 초본의 고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20년 개관하는 국립문자박물관 등 문화기관과 연계한 문학 체험 프로그램을 검토 중인 인천시는 국립문화시설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을 유치의 당위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구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춘천시는 10일 유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과열이 예상됨에 따라 문화부는 광역지자체별로 두 군데 이내로 후보지 신청을 받기로 했다. 강원도의 경우 춘천 강릉 원주가 경합을 벌이자 도지사가 도내 후보지를 한 군데로 단일화하겠다고 밝혔다.

유치 희망 지역에는 저마다 사유와 배경이 있다. 그곳 출신 문인들이 많은 지역이 유리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문학행사를 다양하게 잘 개최해온 지역일수록 자존심을 걸고 유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국립문학관은 늦었지만 잘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후보지 선정부터 투명 공정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립문학관 설립은 행정기관과 각종 공사를 지방으로 옮겨주거나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안배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추진하면 안 된다. 또 정치인들의 업적 싸움이나 힘겨루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후보지 단일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강원도는) 정치적으로 열세인 만큼 선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곳으로 압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평가위원회가 우선 따져봐야 할 것은 건립 부지의 타당성과 현실성일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문학적 유산, 문화행정의 경험과 실적, 주민 호응도, 각종 문화시설 현황, 지역주민들의 독서 실태를 비롯한 각종 문화지표를 평가의 준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수도’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국고를 들여 번듯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문학을 짓고 예술을 심는 일이다. 그 과정도 문학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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