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쌓인 영수증 보며… 쉬운 ‘가계부 앱’ 만들자 결심
창조적 발상은 우리 가까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실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조금 덜어 줄 수 있다면, 혹은 내가 느끼는 아쉬움을 약간이라도 달래줄 수 있다면이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당장 세상을 바꿀 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어도 괜찮다. 무릎을 딱 치면서 ‘아 그렇지’하면서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아이디어라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 덕에 내 삶이 더 편리해지고 실용적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많고 꿈도 많았던 소녀가 거침없는 도전을 거듭하며 성장했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스타트업 먼데이드림 장채린 대표 이야기다.
장채린 대표는 사회 통념상 다소 이른 나이인 26세에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경제권을 누가 쥘 것이냐는 이야기가 오갔고, 남편은 장 대표에게 가정 내 경제관리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장 대표는 자신이 경제권을 가지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 판단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카드 결제 영수증이 든 커다란 상자를 방에서 가져나왔다. 그리곤 노트와 펜, 딱풀을 내밀었단다. 수북하게 쌓인 영수증을 보는 찰나 후회가 밀려왔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내뱉은 말이 있으니 번복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말 당황스러웠죠. 노트에 영수증을 하나하나 붙이고 그 옆에 금액과 상호를 쓰면서 계산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본래 성격이 털털하고 꼼꼼하지 않아서 잘 못 챙기는터라 앞이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잘 모르니까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찾기 시작했죠. 근데 찾아 본 가계부 앱들은 일일이 손으로 수치를 입력해야했어요. 화면도 작고 불편하더군요. 차라리 직접 쓰는게 낫다싶을 정도로요. 이런 불편을 해소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죠.”
장 대표의 창업 아이템 발굴은 여기서 시작됐다. 평소 스마트폰으로 셀카나 맛집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영수증도 스마트폰으로 찍고 앱이 정보를 읽어 들여 지출 내용을 자동입력해주고 관리까지 해주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13년 가량 국내외를 오가며 음악 플랫폼 사업을 해온 남편도 적극 지지했다. 그렇게 사업 아이템을 현실화 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애초부터 싱가포르나 베트남 등 아시아권 해외 진출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베트남인 개발자 4명과 디자이너 1명, 한국인 개발자 1명, 타이핑리스트까지 인력을 꾸려 약 8개월간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8일 신개념 디지털 가계부 ‘레픽(RECPIC)’이 탄생됐다. 레픽은 ‘영수증(RECEIPT)’과 ‘사진(PICTURE)’의 줄임말로, 단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쉽게 자신의 지출과 소비를 관리할 수 있는 가계부 애플리케이션이다. 사용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구매할 상품의 가격을 비교해주고 최적의 상품을 알려주는 알람 기능도 더했다.
“돈을 무조건 아끼라는 것이 아니에요. ‘돈을 써야하면 효율적으로 써. 내가 도와줄게’라는 거죠. 조사해 보니 가계부를 3명에 1명 꼴로 쓰는데 그 중 모바일 사용자가 20% 정도였어요. 나머지는 수기로 작성한다는 얘기죠. 이유는 구체적으로 쓰고 싶기 때문인데, 마트에서 10만원어치 장을 봐도 문자인식 방법은 전체 지출액만 기입되지 상세 품목을 알 수 없거든요. 오로지 영수증에만 나오죠. 그래서 저희가 중요시 하는게 타이핑리스트의 역할이에요. 정확도를 높이는 장치죠.”
레픽 사용자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도 바로 정확도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타이핑리스트가 데이터를 입력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 돈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상세히 정리해주는 만큼 소요 시간을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 그렇다고 보안에 소홀할 순 없다. 영수증에 기본적으로 개인 정보가 들어있지 않기도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사용자의 경우 본인의 데이터가 있는 부분을 감추거나 삭제 후 보내면 되고, 타이핑리스트도 한 번 열람한 영수증은 다시 볼 수 없도록 시스템화했다. 레픽의 이용약관과 정책은 법무법인을 통해 항시 검토 중이다.
현재 레픽 가입자는 8000명 가량이다. 하루에 들어오는 영수증은 평균 500장 정도. 출시 5개월만의 성과다. 안드로이드 금융 분야 핫이슈 인기차트 1위에 오르는가 하면 ‘모바일어워드코리아2016’ 생활서비스 분야 가계부 부문 대상 수상의 영광도 누렸다.
장 대표는 레픽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젊은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이지만, 성장기를 돌아보면 지금 하는 일은 의외의 결과물인 듯 보인다. 반전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꿈꿨던 건 연기자였다. 잠시 아역배우로 활동한 적도 있다. 그 꿈이 너무 좋아서 전교석차 꼴등 수준의 성적을 100위권 안으로 올려 안양예고에 들어갔고, 동덕여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기상캐스터에 도전, 일본 웨더뉴스(WNI)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 방송 영역에서 전문성을 더 갖추기 위해 고려대 언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다.
“사실 연기자의 꿈을 접고 생각한건 쇼호스트였어요. 아카데미까지 다니면서 열정을 불태웠죠. 그런데 그 일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어요. 겨우 스무 한 살이었으니까요. 주변에서 기상캐스터나 아나운서는 어떠냐면서 쇼호스트가 정 되고 싶으면 나중에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나운서는 ‘똑똑한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 탓에 자신이 없었어요. 난 실기 위주로 해왔기에 할 줄 아는 건 연기뿐이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일본 웨더뉴스 기상캐스터 모집공고를 접했는데, ‘한 번 해볼까?’라는 호기심과 도전심리가 발동했어요. 그래서 지원하고 시험을 보러갔죠.”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상회사인 웨더뉴스의 채용절차는 독특했다. 1차 면접은 통상 기업 면접처럼 이뤄지나, 2차 면접은 시민들의 투표로 평가가 이뤄졌다. 장 대표는 1차 면접에서 ‘잘 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한복을 입고 사극 연기를 선보였고 이것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샀다. 2차 면접은 자신을 홍보하는 것. 전단지를 돌리고 신촌 등을 돌면서 큰 소리로 인사하고 자신을 PR하러 다녔고 합격했다. 그렇게 일본행을 택했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1년 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고 엄청난 천재지변 때문에 한 순간에 실직자 신세가 됐다. 한국으로 돌아와야했다.
“엄청난 경험이었어요. 30층짜리 빌딩이 눈앞에서 휘청거리는데 정말 무섭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하게 됐죠. 그런데 결혼 후 매일 울었어요. 결혼과 동시에 기상캐스터의 꿈을 포기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감당하기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무뎌졌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내 일의 가치를 발견하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거든요.”
장 대표는 또래보다 한 걸음씩 앞서 나갔다. 하고 싶은 일을 빠르게 찾고 실행에 옮겨 무언가 이뤄내려고 했고, 도전 앞에선 겁없이 달려들었다. 빠른 결단력이 한몫했다. ‘우선 하고 보자’는 배짱도 밑바탕이 됐다. 결혼과 꿈을 맞바꾼 건 아니었지만 힘든 시기가 분명히 있었고 그걸 이겨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레픽 오픈 첫 날 관리자 페이지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구글플레이에 내가 만든 앱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죠. 주부들과 엄마들을 위해 만든 어플인데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줘서 감사하죠. 레픽을 전 세계 최고의 앱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가족을 챙기느라 자신의 여유를 챙길 수 없는 엄마들을 돕고 싶어요. 가계부 정리하는 1시간을 5분으로 단축시켜 55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내가 어느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영수증을 레픽으로 찍고 있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네요.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습관화가 돼 레픽이 즐거움이 되고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