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여행지의 삶과 생활, 문화, 환경, 자연을 존중하는 여행 돼야
“친애하는 제주도 관광객 여러분. 죄송하지만 우리 집은 관광 코스가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울리는 초인종과 경보음으로 저희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힘겨워해 제주 애월읍 소길리 집을 떠났다는 보도가 난 이효리가 SNS에 올렸던 글이다.
“이곳에 벽화가 생긴 이후 밤낮없이 소음과 낙서, 쓰레기 투척에 시달렸습니다. 구청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엔 문도 못 열고 감옥살이합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보니까 대문을 한번 나오려고 해도 창피한 겁니다.”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SBS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촬영 등으로 유명해진 뒤 국내외 수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 계단 벽화를 지운 주민들의 항변이다.
국내외 여행객이 폭발하고 있다. 여행의 행태도 다양하다. TV와 신문 등 대중매체도 하루가 멀다고 수많은 여행 관련 뉴스나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여행자 중심의 여행 행태는 여전하다. 여행 산업 역시 철저히 여행자 중심이다.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여행 콘텐츠도 여행자 중심으로 먹는 것, 쇼핑하는 것, 유적지 구경 등 여행자 욕구 충족을 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여행자 중심의 여행 행태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효리 집처럼 여행지의 집주인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와 사생활을 방해받고 이화마을 주민처럼 밤에도 잠을 잘 수 없게 떠드는 관광객의 소음으로 생활에 심대한 지장을 받는 것에서부터 환경오염과 관광지 훼손에 이르기까지 여행자만을 위한 여행은 수많은 문제를 양산한다.
“관광은 해변에서 태닝을 하거나 고대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소비 중심주의와 무한한 경제성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추구하는 회사와 정부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바르고 일광욕 의자에 누운 관광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보병이 된다.” 여행 저널리스트 패멀라 노위카(Pamela Nowicka)가 그의 저서 ‘공정 여행, 당신의 휴가는 정의로운가? (원제: The No-Nonsense Guide to Tourism)’에서 적시했듯 여행자 욕구 중심의 여행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은 근본적인 문제를 구조적으로 발생시킨다.
이효리와 이화마을 주민의 피해 호소는 여행이 여행자 중심이 아닌 여행지의 삶과 문화, 자연을 존중하는 여행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누군가를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 있는 여행이다. 여행자 자신뿐만 아니라 여행지의 주민까지 행복한 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이 때문에 ‘공정 여행(公正旅行·fair tourism)’이 절실하다.
‘책임관광(responsible tourism)’ ‘착한 여행’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공정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관광지에서의 관광객이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민의 경제적 이득과 행복을 구현하는 관광 형태를 말한다.
여행 전문가들은 공정 여행은 여행지의 삶과 생활, 문화, 환경, 자연을 존중하는 여행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여행자가 사용한 비용이 관광지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여행이며 여행자도 즐겁고 관광지 지역 공동체도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여행이 공정 여행이라고 주장한다. 공정 여행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관광지의 주민과 자연,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고 여행하는 것이 공정 여행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 계단 옆쪽 집 벽면에는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 말이냐, 주민들도 편히 쉬고 싶다’는 절규가 쓰여 있다. 이효리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식을 올린 소중히 아낀 소길리 집을 떠났다. 당신의 여행은 이 절규와 이효리의 강제 이사에 책임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