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50미터, 1차로로 유유히 질주 중인 화물차 출현. 검정 쏘나타가 그 화물차 옆으로 스르륵 다가선다. 화물차 운전자는 휴대폰 통화까지 하고 있는 상황. 본격적인 단속 시작. 고속도로에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물차 운전자는 상황파악이 안 됐다. 일반 쏘나타와 다를 게 없는 차가 갑자기 순찰차로 돌변해 자신을 단속한다는 사실은 비현실적이었으리라.
실내 앞유리 위와 프런트그릴 안쪽에 달린 경광등을 요란하게 번쩍이며 창문을 내려 경찰임을 알렸고 이후에야 위반사실을 알아채고 경찰차를 따라 안전지대로 이동했다. “우선 위반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어요.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는 데 경찰차는 없고. 제 옆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교통법규를 더 열심히 지켜야겠어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청나네요. 물론 모두의 안전을 위한 법규니까 당연히 지켜야죠. 법이니까요.”
4월 초, 평일 오후. 3월 1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암행순찰차 뒷자리에 올라 경부고속도로 서울 IC를 출발한지 채 1분도 안돼 벌어진 상황이었다. 6월까지 시범운영 중인 암행순찰차는 두 대. 양재에서 안성, 안성에서 신탄진으로 구간을 나눠 각 한 대씩 암행단속 중이다. 3분쯤 지났을까? 이번에도 1차로로 달리는 화물차였다. 단속을 하고 보니 무면허 운전자였다. 이런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톨게이트로 나와 대리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까지 확인해야 단속이 끝난다.
“약 70번 중 한 번은 무면허나 지명수배자들이 단속됩니다. 시행 첫날인 3월 1일에는 지명수배가 떨어진 중범죄자를 검거했습니다. 이 또한 암행순찰차라서 가능한 일일 겁니다. 평일에는 화물차나 갓길, 버스전용차로 위반차들이 많아요. 가끔 과속이나 난폭운전도 단속하긴 하지만 교통량이 많은 구간이라 빈번하진 않습니다.” 스티어링을 직접 잡은 채 고속도로를 부드럽고 빠르게 달리는 윤광득 경사의 말. 1999년부터 경찰생활을 시작한 그는, 고속도로 순찰대에서만 7년차인 베테랑이다. 옆자리 파트너로는 검정 선글라스에 경찰모자를 깊게 눌러 쓴 카리스마의 김동철 경장이 함께 한다. 그 역시 7년차 원숙한 경찰이다. 고속도로 경찰대 1지구대 소속의 두 경찰은 순찰차로 양재와 안성을 오가며 근무 중이다.
암행순찰차를 타기 위해 지원한 경찰들 가운데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정예요원이기도 하다. 암행순찰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단속에 투입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기존의 일반 순찰차로 단속을 펼친다. 시범운영이 끝나는 7월부터는 전국 고속도로 12개 지구대에 암행순찰차를 투입해 광범위하게 단속을 펼칠 예정이다. 기흥 IC 근처. 유유히 고속도로를 걷고 있는 아주머니의 등장에 모두 당황했다. 휴게소에서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로 들어선 아주머니 역시 당황한 상태. 민망함과 당혹감에 사과하며 돌아서는 아주머니가 시야에서 안전하게 사라질 때까지 확인을 한 후에서야 순찰대 임무는 끝났다. 24시간 3교대로 2인 1조 활동 중인 고속도로 순찰대원들은, 평일 기준 양재에서 안성을 다섯 번쯤 왕복한다.
위반사항들을 단속하고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출동 및 조치도 취한다. 평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는 차들이 많았다. 버스전용차로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정체가 시작되면서 버스전용차로 위로 스타렉스와 카니발들이 점점 많아졌다. 여섯 명 이상 탑승해야 버스전용차로를 탈 수 있지만 태반이 한두 명 탄 채로 질주다. 비웃기라도 하듯 암행순찰차 옆을 쏜살같이 질주 중인 검정 스타렉스 출현. 사이렌을 울리며 추격을 시작했다. 불법 스타렉스는 순한 양처럼 따르던 기존 불법차들과 태도가 달랐다. 추격할수록 속도를 더 냈다. 추격전 펼치기를 몇 분. 그런데 그들은 지명수배자의 현장검거를 위해 지방에서 출동한 형사들이었다.
가끔 이런 경우도 있단다. 차가 막힐수록 탑승인원을 위반한 MPV들이 늘었다. 암행순찰차의 본격 등장 전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버스전용차로를 질주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가고 서길 반복하는 일반차들을 농락하듯 즐겁게 달렸다. 단속카메라와 경찰차만 없으면 불법은 자연스럽게 자행됐다. 탑승인원을 위반하고서 당당하게 달리던 짙은 선팅의 MPV들을 보며 얼마나 얄미워 했던가. 미꾸라지 같은 얌체족들을 응징하며 공공의 법과 질서를 지키는 암행순찰차의 위력과 효과는 실로 놀랍고 현실적이었다. 암행순찰차는 일반 검정 쏘나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탈부착이 가능한 자석식 경찰마크를 보닛과 양쪽 앞문에 붙였다. 겉모습 차이는 이게 전부다. 시범운영이 끝난 후 7월부터는 경찰마크도 뗄 예정이다. 휴대폰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성능 좋은 블랙박스와 내부 경광등, 사이렌 스피커 혼, 단속 시 안내 및 유도를 위한 문구를 보여주는 후면 문자 표출 전광판, 사이렌과 스피커 등을 통제하는 센터페시아 컨트롤박스가 전부다.
혹자는 암행순찰차의 도입을 두고 단속 및 세수 확충을 위한 무리한 함정단속의 방편 아니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해다. 우선 경찰공무원의 업무평가에 단속실적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세수확충을 위한 도입도 아니다. 한해 교통단속 적발건수는 약 1천500만 건. 이중 1천만 건이 무인단속 적발이다. 단속을 통한 세수 늘리기가 목적이라면 속 편하게 단속카메라를 늘리는 게 낫다. 암행순찰차의 목적은 안전운전 도모다. 경찰과 카메라 눈을 피해 난폭, 얌체, 지정차로 등을 위반하는 운전자를 줄이기 위함이다. 비노출 단속이 위법행위에 대한 심리적 억제와 단속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암행순찰차 도입 후 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경기남부청에 따르면 암행순찰차 운행 이후 3월 한 달 동안 버스전용차로 위반 적발 건수는 2천234건으로 작년 3월(2천935건)보다 701건(23.9퍼센트)이나 줄었다. 또 지난해 3월 8천591건이 적발됐던 속도위반도 올해 같은 기간 6천57건으로 2천462건(28.7퍼센트)이 줄었다. 시행초기지만 시나브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암행순찰차는 당신 옆에서 묵묵히 주행 중이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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