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아동학대 1만1700건 발생… 가해자 80% 친부모, 혼자 있게 하는 ‘방임’도 문제
#.2013년 말 온 나라를 흔들었던 ‘서현이 사건’에서 멍, 화상, 대퇴부 골절 등 아동 학대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있었지만 병원 의사, 담임교사, 피아노 학원 원장 등은 학대를 의심하지 않아 신고를 하지 않았다. 서현이는 갈비뼈가 16개 부러져 사망했고 부러진 뼈가 폐에 박혀 있었다.
1998년 ‘영훈이 사건(영훈이 누나는 부모에게 맞다가 숨진 후 암매장됐고, 영훈이 또한 심하게 맞은 상태로 발견됨)’으로 2000년 아동복지법이 전면 개정됐고, 2013년 ‘서현이 사건’으로 아동학대 특례법이 만들어졌다.
지난 3월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원영이 사건’으로 정부가 영유아 건강검진과 필수 예방접종에서 소외된 아이들과 장기 미취학 아동을 전수 조사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는 주로 가정 내에서 발생하며, 피해자가 미성숙한 아동이어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동 학대는 점점 흉포화되고 사회는 다시 무감해지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주체의 범위를 가족에서 이웃과 사회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만으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본지는 3회에 걸쳐 아동학대 실태를 심층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세계 인구의 날(7월 11일)을 맞아 우리 사회의 심각한 현안으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 극복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아동학대 없이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최우선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7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5 전국아동학대 현황’을 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9209건이었으며 이 중 1만1709건은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받았다. 아동학대는 전년 1만27건보다 16.8%(1682건) 늘어났다. 신고 건수는 전년의 1만7791건보다 8.0% 증가했는데, 아동학대 증가율이 신고 건수 증가율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자녀에 대한 폭력에 너그러운 한국 사회 = 아동학대 신고 사례는 2005년 이후 완만하게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14년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다.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과 종합대책 시행 등으로 신고 의무가 강화되고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 아동 1000명당 아동학대 발견율은 1.3건으로 미국(9.1건)이나 호주(7.8건)에 비해 저조하다.
우리나라의 여전히 낮은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작용한 탓이 크다. 그러다 보니 법 집행자 또한 상대적으로 관대한 잣대를 가지고 문제를 다루기 십상이다.
한국은 훈육을 이유로 한 체벌이 당연시되고,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아동학대라고 하면 주로 계모나 계부에 의한 잔혹한 사건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 아동학대 관련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가해자의 80% 이상이 친부모다. 아동학대 10건 중 8건은 부모에 의해 발생됐음을 알 수 있다. 계모나 계부인 경우는 3%도 되지 않는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너그러운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학대 받은 아이의 보호자(부모 포함)가 아동기에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45.7%에 달해 ‘폭력 되물림’도 심각하다. 어릴 때부터 가정 내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결과다.
복지부의 ‘아동학대 사망 관련 지원 서비스 체계화 방안 연구’를 보면 부부간 폭력이 있는 경우에는 폭력이 없는 경우에 비해 아동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4.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방임’, 끔찍한 결과 불러 = 전문가들은 길거리에서 아이가 어른에게 호되게 맞고 있어도 ‘남의 가정사’라며 신고를 꺼리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자동차에 혼자 아이를 놔두거나 집에 13세 미만의 아이를 혼자 있게만 해도 아동학대 유형 중 하나인 ‘방임’으로 보고 신고 대상이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아 아이를 혼자 둬도 문제될 게 없다.
2014년 한국에서 신고된 아동학대 가운데 방임은 3136건으로 전체의 20.3%를 차지했다. 특히 정서 학대와 방임이 동시에 발생하는 중복 학대는 다른 유형에 비해 학대를 의심할 만한 징후가 눈에 띄기 어려워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어 문제가 더욱 크다.
2014년 전국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서 신고 의무자를 대상으로 한 학대 인식에 대한 응답을 살펴보면 정서학대와 방임이 학대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55.5%, 49.7%에 불과해 낮은 수치를 보였다. 실제 2014년 학대로 사망한 아동 17명 중 순전히 방임으로 숨진 아이가 4명(23.5%)에 이른다는 점에서 방임이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 학대의 유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돌보는 주체의 범위를 가족에서 이웃과 사회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만으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의 소아과 의사들은 아이들 몸에 학대 징후가 보여도 신고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특히 방임은 아무도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한국의 사회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방임까지 학대로 인정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학대의 경계선이 불분명하고 훈육을 인정하는데,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신체적 상해에 대해서는 모든 기관에서 민감하게 대응하고 엄격하게 법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