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민간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겁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말입니다. 2주 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두 달 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우리 경제가 위축될 거라고 경고했죠. 그러면서 경제성장률을 2.8%에서 2.7%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가계부채 경고음 속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내비친걸 보니 ‘어머! 이건 꼭 말려야해’란 생각이 들 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복 더위도 잊은 채 헌법재판소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일(28일) ‘김영란법’ 위헌 여부가 가려지거든요. 핵심 쟁점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임직원을 포함하는 것이 맞느냐’는 건데요. △부정청탁과 사회상규의 개념 △외부강의 사례금 허용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 △배우자 신고의무 등도 함께 들여다본다고 합니다.
“김영란법이 뭐길래….”
이 법은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를 막기 위해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제안한 건데요. ‘부패 고리를 끊어내자’란 생각이 바탕이 됐다고 합니다. 내일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와 봐야하겠지만, 이 법의 적용 대상은 3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내용을 좀 살펴볼까요? 우선 일과 관련해 100만 원 이하의 금품을 받으면 2~5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금품수수 상한선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인데요. 직무와 상관이 없더라도 같은 사람으로부터 한번에 100만 원 이상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형을 받습니다.
감이 안 오시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 대학 동기는 A기업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서울 강남에 있는 OO일식에서 만나 모둠회 한 접시와 사케 1병을 먹었는데요. 15만원이 나왔습니다. 물론 동기가 샀습니다. 집에 가는 길엔 생일 선물이라며 7만원 상당의 수분크림도 주더군요.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예시입니다.) 법이 시행됐다면 전 처벌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교 목적의 음식물 제공은 허용하고 있지만, 기업 홍보팀과 기자는 업무 관련성이 크니까요.
‘김영란법 직접적 경제적 손실 11조 원+α…추경 효과 잠식’
오늘 이투데이에 실린 기사입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얼마 전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따져 봤는데요. 원안대로 시행되면 연간 11조60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500조 원)의 0.7~0.8%에 해당합니다.
우선 음식업계는 8조5000억 원의 피해를 입고요. 골프업은 1조1000억 원, 선물 관련업은 2조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소비침체에 따른 간접적 효과까지 더하면 손실액은 더 커질 수 있고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견뎌내고 간신히 살아난 소비심리가 ‘김영란법’ 때문에 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 하죠. ‘청탁 받아야 경제가 산다는 말이냐’는 반문 속에서 유일호 부총리의 “김영란법, 정말 걱정 된다”는 말이 괜한 건 아닙니다.
이쯤 되니 옆 집 사정이 궁금해집니다. 사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김영란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닉슨 대통령이 연루된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1978년 정부윤리법을 제정했고요. 싱가포르는 1960년에 부패방지법을 시행했습니다. 일본(2000년), 영국(2001년), 독일(1997년)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이 나라들도 법 시행 이후 경제가 휘청였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법 제정과 동시에 소비자기대
지수(앞으로 6개월 후의 소비자 동향을 나타내는 지수)가 급락했고요. 일본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닙니다. 독일은 19년 전 부패단속법 시행 후 지난해 뇌물수수 처벌을 강화했는데요. 소비자심리지수는 발효 시점 이후 되레 상승하고 있습니다.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얘기죠.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명언입니다. 위헌 결정을 하루 앞두고 “이 기회에 ‘김영란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댓글을 보니 이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네요. 법이 시행되면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패수준 OECD 28위’란 오명을 떨쳐내려면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입니다. 우병우 사태부터 진경준 스캔들까지…. 볼썽사나운 일들이 연이어 터지는 걸 보면 그때가 바로 지금인 듯하고요. 접대를 막으면 경제가 위축된다고요? 제 밥값만 내면 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