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벤처1호’ SNU프리시젼 창업…지난 5월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에 취임
“도전하는 청년이 건강한 사회 이끈다.” 거침없이 붓펜을 휘두르니 한자로 가득한 ‘명심보감 천명편’의 글귀가 금세 완성됐다. 명심보감에서부터 논어까지 명서들의 글귀가 모두 쓰이기까지 붓 끝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향교에 있을 줄 알았어요.” 붓펜을 놓고 멋쩍은 듯 웃음을 지어보이는 이 사람은 ‘서울대학교 벤처 1호’인 SNU프리시젼의 창업자이자, 2기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인 박희재<사진> 서울대 교수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것만 같은 인상이지만, 최근 청년취업과 기업가정신, 그리고 창업에 대해 국내에서 고민이 가장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7월 마지막 주 서울 광화문 인근 청년희망재단 사옥에서 만난 박 이사장이 꺼낸 첫 화두도 청년 일자리 문제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된 청년희망재단은 국민 기부와 참여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을 펼치는 민간재단이다. 최근까지 11만명이 합류해 약 1400억 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했다. 박 이사장은 지난 5월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에 이어 최근 2기 이사장으로서의 집무를 시작했다.
박 이사장은 향후 청년희망재단의 방향과 관련해 “청년 일자리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만큼, 뜻을 모아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며 “그간 대학과 기업인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 박 이사장은 재단을 통해 자신의 회사인 SNU프리시젼에 채용할 청년 인력을 뽑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채용해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귀한 일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며 “이보다 더 좋은 애국은 없다고 생각해 나의 경험을 주변에 확산시키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박 이사장은 청년희망재단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일부 취업이 어려운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원을 통해 인력 수요가 있는 일부 업종 업무를 다시 교육시켜 채용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며 “대학들과 협력만 되면, 향후 정부에 이 같은 방안을 건의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시도도 현장에 나오지 않았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 현장 수요에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야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우리는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일을 해야한다”며 “현장 수요에 눈높이를 맞추고, 이것들이 현장에서 호응을 받게 되면 정부로까지 확산돼 하나의 모멘텀이 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이 박 이사장이 색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가 가진 다양한 배경이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수에서 벤처기업인으로 도전을 택한 것도 그렇지만, 그 과정도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가 창업한 반도체ㆍLCD검사장비 업체 SNU프리시젼은 서울대 벤처 1호로도 유명하다.
박 이사장은 “조용히 서울대에서 교수를 하다가 1998년 ‘내가 가진 기술로 1달러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자본금 5000만 원을 들고 대학 안에서 창업을 시작했지만, 당시엔 교수의 회사 설립은 불법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총리실, 교육부, 국회 등을 쫓아다니며 노력한 끝에 벤처특별법 한 조항에 ‘대학에 교수, 연구원이 창업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데 성공했고,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SNU프리시젼 본사에는 아직도 박 이사장이 첫 수출로 벌어들인 1달러가 액자로 걸려있다. ‘기술보국(技術報國)’의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에서다. 박 이사장은 “일부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기업이 5000개 정도만 있다면 성장, 고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 이런 사례를 많이 만들고자 하는 게 내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성장, 채용, 창업 등 모든 것의 중심에는 기업가정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이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에 뛰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최근까지 국가최고기술책임자(CTO)격인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을 맡았던 만큼, 공무원 조직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 그다.
그는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서도 기업가 정신이 낮은데, 엘리트일수록 도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엘리트가 도전해야 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엘리트들이 창업하고, 경영하고, 채용해야 건강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창업과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힘든 과정이 많아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소위 말하는 상위 1%라는 엘리트들이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 찾기에 매달리는 것보다, 생산적인 창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박 이사장은 대학 교육과 기업 현장간의 괴리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우 대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평소에 기업들과 스킨십을 자주 갖는다”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그리고 평생 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해 해당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