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우리보단 정치 선진국일 미국이나 영국 같은 국가에도 뇌물이 성행하는 모양이다. 김영란법보다 더 까다롭고 엄격한 부패방지법이 있다는데도 뇌물을 경계하는 경구나 잠언이 아직도 생산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2008년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가 오바마에게 패배했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1936~)은 “워싱턴에 뇌물은 없다. 강탈이 있을 뿐이다. 자발적으로 갖다 바쳐야 뇌물이지 뜯어낸 돈은 뇌물이 아니다. 돈을 내놓으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고 탄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들이 돈을 뜯어낸 사례는 정말 많다. 지난 국회에서는 뇌물수수 등 부패 혐의로 의원 체포동의안이 11차례나 제출됐다. 사례 두 개만 들겠다. 승용차 뒷자리에 현금 3000만 원이 들어있는 가방을 두고 내린 국회의원. 그걸 들고 사라졌던 운전기사.
그 국회의원은 이 사건이 빌미가 돼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사당에서 의정활동에 ‘열심’인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결국 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그 뻔뻔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억 원대의 현금만으로는 모자라 고급 안마의자, 초고가 스위스제 손목시계 따위의 값비싼 물건을 받고는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아는 사람 집에 감췄다가 걸린 치사한 국회의원도 있었다.
서울의 한 시의원이 뇌물을 뜯어내고는 민원을 해결해 주지 못하자 뇌물 준 사람을 청부살해한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지금 무기징역형을 살고 있는 이 젊은 전직 시의원이 정치 선배들에게서 더럽고 탁한 검은 물이 들었을 것이라고 믿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다.
이처럼 정치 현장 아래·위에서 뇌물 강탈 및 수수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김영란법에서 자신들은 예외로 했으니 그들은 ‘사적 거래에서 뇌물은 범죄이나 공적 분야에서 뇌물은 규범’이라는 말을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프로레슬러에서 일약 미국 미네소타 주지사로 뽑혀 화제가 됐던 제시 벤추라(1951~)가 한 이 말을 그들은 어디서 들었을까. 우리 정치판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을 수도 있겠다. 정치판이란 예나 지금이나, 여기나 저기나 다를 것이 별로 없을 것이므로.
다음은 7월 초 중국을 다녀온 인사가 전해준 중국 이야기. 모모한 민간 경제연구기관을 이끌다가 얼마 전 서울의 한 대학교의 대학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옌볜에서 열린 한-중 간 간담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회의 주제나 토론 내용보다는 회의 전후의 중국 쪽 분위기를 전하는 데 시간을 더 썼다.
“거 참 이상하더군. 오전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술이 없어. 중국 사람들, 낮이나 밤이나 밥 먹을 때는 쉴 새 없이 술을 따라줬잖아. 자기네들이 공술 진탕 마시려고 말이야. 그런데, 테이블에 아예 술이 없어. ‘한잔 합시다’라고 해도 고개를 젓는단 말이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부패방지법 비슷한 게 발동되어서 낮술을 하면 큰일 난다는 거야.”
중국 측의 ‘이상 동향’은 그날 저녁 만찬회에서 계속됐다. “만찬회에 우리는 회의 참석자 8명 모두 나갔는데, 저쪽에서는 3명만 나왔더라고. 회의 파트너만 해도 8명인데 3명만 참석했으니 이상하잖아. 전에는 만찬이다 뭐다 먹을 일만 있으면 회의 참석자 외에 약간이라도 관련 있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왔는데, 꼭 봤으면 하는 사람도 안 나온 거야. 이거도 부패방지법 때문이더라고. 만찬 등 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 숫자에도 제한이 생겼대. 우리 쪽에서 10명이 참석하면 중국 쪽에서는 5명만, 우리 쪽에서 5~10명이 참석하면 중국에서는 3명까지 나갈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연회 참석 인원 숫자를 정해놓았다는 거야. 어기면 처벌이 상당하다는 말도 하더라고.”
그가 간담회 자체보다는 중국의 부패방지 노력에 대해 더 오래 이야기한 건 이러다가는 우리가 도덕과 윤리에서도 중국에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경제가 우리보다 낫다는 중국이 부정부패 처리에서도 우리보다 앞서 나가면 정말 우리 경제는 영원히 주저앉고 말 거라고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걱정과 염려는 제대로 된 윤리와 도덕 또한 기술력이나 자본, 우수한 노동력 같은 것 못지않게 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요소임을 잘 알고 있는 경제전문가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하고 있을 걱정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전쟁에서 전투를 벌이다 패배한 왕이 뇌물 때문에 진 왕보다 덜 창피하다”는 로마시대의 역사가 살루티우스(B.C.86~B.C.35)의 경구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후손들에게서 뇌물 때문에, 부정부패 때문에 나라 망친 조상들이라는 욕을 먹어서야 되겠는가? 어쨌거나 김영란법은 국회의원들에게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다른 건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