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韓 58만원 vs 美 14만원… 서민 잡는 전기요금 누진제

입력 2016-08-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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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뿜')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게시물입니다. 미국의 한 가정집 전기요금 고지서가 보이네요. 지난해 7월 한 달간 이 집주인이 쓴 전기 사용량은 1054㎾h(킬로와트시)입니다. 요금으로 124달러69센트(약 13만8000원)를 내야 하죠. 만약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양의 전기를 썼다면 얼마를 내야 할까요? 정답은 58만3600원. 스마트폰 한 대를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푹푹 찌는 찜통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을 켤 때마다 엄마 눈치를 봅니다. 열대야 때문에 밤엔 토끼잠을 자고요. 찬물로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드러누워도 금세 이마엔 땀방울이 맺힙니다. “전기요금 누진제가 사람 잡네”란 말이 나올 만하죠.

전기요금 누진제는 사용량에 따라 단가를 높이는 제도인데요. 많이 쓰면 많이 내야 한단 얘기죠. 전기요금 누진 단계는 월 100㎾h를 단위로 여섯 구간으로 나뉩니다. 최저 구간인 1단계(㎾h당 60.7원)와 최고 구간인 6단계(㎾h당 709.5원)의 요금 누진율은 11.7배나 차이가 나고요. 감이 안 오신다고요?

냉장고(24시간), 에어컨(5시간), TV(7시간), 형광등(4시간)이 있는 가정집의 한 달 전기 사용량은 380㎾h 가까이 됩니다. 요금으로 계산하면 7만2400원이죠. 그런데 만약 에어컨을 10시간 동안 가동하면 얼마나 나올까요? 25만7600원(650㎾h)을 내야 합니다. 조금 더 시원하게 지냈을 뿐인데, 요금은 3배 넘게 뛰었습니다. 보기 쉽게 누진제 구간별로 따져볼까요?

1. 200㎾h: 2만200원
2. 300㎾h: 4만4300원
3. 400㎾h: 7만8800원
4. 500㎾h: 13만200원
5. 600㎾h: 21만7300원
6. 1000㎾h 초과: 54만80원

(출처= 한국전력ㆍ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무심코 썼다간 요금 폭탄을 맞는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4년 처음 도입됐습니다. 1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전기를 아껴 쓰자’란 생각이 바탕이 됐죠. 그런데 이 누진제는 억울(?)하게도 가정용에만 적용됐습니다. 집에서 에어컨을 켜면 가족들이 일사불란하게 창문부터 닫지만, 명동에 있는 상점들은 아무리 단속을 해도 출입문을 활짝 여는 이유죠.

이웃집 사정은 어떤지 들여다볼까요? 미국(2단계)과 일본(3단계), 대만(5단계) 등이 전기요금 누진제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최저와 최고구간의 요금 차이가 1~2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부당 징수한 전기요금 차액을 가입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곽상언 변호사, 8일 YTN 라디오에서)

결국,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힘을 뭉치기로 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내기로 한 겁니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인강에 어제(8일) 하루만 46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하네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강조하며 힘을 더했고요. 사람 잡는 가마솥더위 속에서 에어컨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억울함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갑니다.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면 요금 폭탄 맞지 않습니다. 전력 수요를 낮추려면 누진제가 필요합니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9일 브리핑에서)

정부의 답변입니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할 계획이 없다 하네요. 원가를 그대로 둔 채 누진제만 손보면 부자 감세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덜 쓰는 사람들이 되레 부담을 안을 수 있다는 얘기죠. 누진 단계를 줄이는 방법 역시 한전이 적자를 볼 수 있으므로 안 되고요. 산업용 요금 인상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싸지 않다’며 선을 긋습니다. 누진세를 없애고 여름철 전력 수요를 소화하는 방법은 발전소를 또 짓는 방법밖엔 없다고 하네요.

▲판매단가는 2015년 실적 기준(출처= 한국전력)

“더위 먹고 병원 가서 고생하느니, 그냥 시원하게 살면서 전기요금 내는 게 나은 거 같아.”

어제 동료 한 명이 병가를 냈습니다. 주말에 갑자기 열이 나고 메스꺼워 응급실에 갔더니 일사병이었다고 합니다. 수액 맞고 한숨 자고 나오는데 9만 원이나 썼고요. 지난달 20만 원 요금 폭탄 맞고 이번 달엔 선풍기로 견뎌보려다가 이렇게 됐다며 속상해하네요. 건강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하는데 전기요금 누진제 앞에선 몸 생각도 멈칫하게 됩니다. ‘한프리카(한국+아프리카)’에서 조금 더 시원하게 사는 게, 큰 꿈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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