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수 삼일회계법인(이하 삼일PwC) 부대표는 지난달 8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 후 가장 바빠진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국내 최대 기업 인수·합병(M&A) 중개업체 중 하나인 삼일PwC 딜비즈니스본부에서 중국과 한국 기업의 M&A 사업 전반을 지휘하고 있다.
사드 배치 결정 한 달을 조금 넘긴 12일 유 대표는 이투데이와 만나 이번 사태가 중국과 한국의 M&A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현재 중국은 안방보험의 알리안츠생명 인수, 타이핑생명의 ING생명 인수 등 여러 투자 건에서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치·외교 부문에서 생긴 감정의 골이 경제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나 유 대표는 이른바 ‘사드 후폭풍’이 연말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중국이 한국 기업과의 교류를 잠시 재고할 여유가 생기면서 국내 기업을 속속들이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M&A 대상이 될 만한 기업·업종이 많이 남아 있다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유 대표는 우려스러운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사드 후폭풍으로 국내 M&A 시장이 위축됐다는, 혹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중국인들이 사드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맞다. 최근 중국 관계자들을 만나면 두 명 중 한 명은 사드 이야기를 할 정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관점에서의 긴장관계다. 중국인들은 애국자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실리주의자다. 명분 때문에 확연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중국에 사드 배치 명분을 확실히 해명했다. 실제적인 위협이나 피해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각각 뜯어보면 사실상 사드는 실물경제를 계속 좌지우지할 만큼 대단한 이슈가 아니라는 걸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최근 경제계에서 나타난 중국의 감정적 대응은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사드 후폭풍은 거기서 끝나는 것인가.
“단기적으로 감정적인 대응이 나타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안방보험과 타이핑생명 등 중국 기업이 한국에 대한 M&A와 투자 등을 일시 정지한 후 새로 쓰게 될 이야기다. 경쟁적으로 한국 기업을 살펴보고 투자를 검토하던 중국 자본에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진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더 꼼꼼히 검토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장기적인 면에서 사드가 국내 M&A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현재 안방보험과 타이핑생명의 애매한 태도도 사드가 원인인 것으로 포장되지만 중국 정부의 보수적인 외환 정책이나 보험산업의 매력 감소 등이 실질적인 요인일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이 탐낼 만한 체력과 성장성을 갖춘다면 사드는 오히려 호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내에 중국이 M&A 매력을 느낄 만한 업종은 많이 남지 않았다. 제조업·화장품·게임 등에서는 M&A가 이미 완료된 상태다. 육아, 교육, 환경 등을 필두로 한 콘텐츠 비즈니스 산업에만 일부 기회가 남아 있다.”
△한국 M&A 시장에서 중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떤가. 외면할 수 없는 규모인가.
“돈의 규모로만 따지면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러나 직·간접적으로 중국 자본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최근 몇 년간 중국 기업과의 M&A, 투자유치, 현지 진출 등의 소식이 전해진 기업은 대부분 주가가 급등했다. 아모레퍼시픽과 빙그레가 그 예다. 이들은 중국 기업과의 M&A 이슈가 있었던 기업은 아니다. 중국을 새 매출처로 확보하면서 기업 체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강해졌고 자연스레 주가 상승으로 연결됐다. 중국에서 직접적으로 자금을 수혈받는 것 외에도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중국 의존도는 높은데 중국에서 보는 한국 시장의 중요도는 크지 않다. 삼일PwC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현지에 팀을 파견해 중국의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국내 기업 대상으로는 중국 기업과의 합작이나 투자 수요를 파악하고 있다. 그 중간에서 양국 기업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려 한다. 중국의 연간 해외 M&A 규모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수준에 불과하다. 미미하지만 절망적이라고 보진 않는다. 현재 삼일PwC에서는 중국과 한국 기업 간 15개의 딜을 주관하고 있다. 이는 삼일에서 중개하는 전체 딜의 약 5% 수준이다. 아직 중개 건수나 규모가 크진 않지만 점점 늘어날 것이다.”
△중국의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는 어떻게 다른가.
“우선 중국은 아직 후진적인 산업구조상 전략적 투자자 비중이 훨씬 크다. 전략적 투자자는 중국 내수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선진적인 제품이나 노하우를 배워 가려는 의지가 강하다. 텐센트, 화웨이, 알리바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재무적 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끼리 협업을 시키는 등 여러 방법으로 단기간에 회사 가치를 올리고 투자금을 회수해 가는 ‘캐피털 게임’에 관심이 있다. 투자금 회수 면에서도 전략적 투자자는 장기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반면 재무적 투자자는 단기 회수를 노린다. 이들과 협업하게 될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각각 일장일단이 있다. 매출을 고도화하고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면 전략적 투자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자본을 조달하고 매출처를 다변화해야 할 땐 재무적 투자자와 일해야 한다. 앞으로는 중국 내에서도 재무적 투자자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중국에서 한국 M&A 규모가 크게 늘어난다면 재무적 투자자가 그만큼 더 들어왔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앞으로 중국에서 투자나 M&A를 노리는 한국 기업은 재무적 투자자를 파트너로 삼는 것이 유리한가?
“아무래도 중국의 산업이 발전할수록 재무적 투자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여기서 더 많은 기회가 나올 것이다. 이들은 자금을 빨리 회수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국내 상장사에 관심이 많다. 중국에서는 마음에 드는 업체를 만나도 상장-회수 절차가 까다로워서 투자를 진행하기 쉽지 않다. 현재 중국의 재무적 투자자들은 대부분 벤처캐피털이다. 우리나라는 벤처캐피털이 많아야 200여 개인데 중국은 대략 추산해도 최소 2000개 이상이다. 자금 규모로 따져도 국내 벤처캐피털과 차이가 크다. 그 ‘큰손’들을 더 잘 유인하기 위해서 국내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는 현재 외국 법인과의 합병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관련 규제가 완화된다면 비상장사 투자로 수익을 내길 원하는 해외 투자자들에게서 러브콜이 이어질 것이다. 투자를 받은 중소기업·스타트업에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한·중 M&A의 절대량은 늘기 어려운 상황인데 삼일PwC 등 주관사의 입지는 점점 커지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역량 있는 중개인이 많아지면 시장의 선순환도 가져오니 긍정적인 현상이다. 삼일PwC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M&A 기획에서부터 실사, 계약까지 책임지는 원스톱 시스템을 제공한다. 주로 M&A 규모가 매우 큰 ‘빅딜(Big Deal)’을 노리는 글로벌 IB들과 경쟁하기보단 각자 잘하는 시장을 찾아가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게임업체인 로코조이는 국내 게임·모바일 업체들의 노하우를 얻는 방법으로 삼일PwC를 통해 코스닥 상장사 이너스텍을 인수했다. 인수한 업체를 현지 거점으로 삼고 디자인, 시스템, 스토리 등에서 뛰어난 국내 조직이나 회사에 대해 현재도 추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아시아 지역 투자 건에 대해서도 중국 기업들이 삼일PwC를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에도 주인이 일본인인 한 회사가 캄보디아에 소유한 회사를 매각하면서 삼일에 딜 관리를 맡긴 사례가 있다.”
△중국 기업과 M&A를 희망하는 기업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M&A 대상 업체를 고르는 것만큼 딜 관리자 선정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 기업은 대체로 소규모 에이전트를 고용해 상대 회사를 파악해 왔다. 조선족 출신 5~6명 규모 소조직이 대부분이며 회계나 세무 등 전문지식이 미흡해 절차상 사고가 빈번한 문제가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자국 자금이 외국으로 빠져나갈 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계약서 한 장만 믿고 중국 기업과의 합작 사실을 공시했다가 대금 납입 등이 무기한 지연되면서 불성실공시법인이 된 업체들이 많다. 애꿎은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파트너를 잘 골라야 한다.
◇유상수 부대표는
유상수 부대표는 한국과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한 후 20여 년간 기업 가치를 높이는 프라이빗(Private) M&A와 구조조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특히 중소기업 딜과 관련해서는 업계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네이버와 한게임, 메가스터디 등이 스타트업이던 시절 모두 그의 자문을 거쳤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우교수, M&A지원센터 센터장, 코스닥협회 자문위원, 중소기업중앙회 창조경제확산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정다운 기자 gam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