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통신] “하는 일에 행복한 게 젊음의 비결”

입력 2016-08-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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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드라마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주역 메릴 스트립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의 최신작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코믹 드라마다. 젠킨스는 비명과 같은 목소리로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자신을 오페라 가수로 생각해 카네기홀 무대에까지 섰던 사람이다. 그 역할을 맡아 여전한 연기력을 보여준 메릴 스트립(67)을 지난달 11일 뉴욕의 콘래드호텔에서 만났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건강미가 넘치는 스트립은 연기하듯 제스처를 써가면서 소프라노처럼 고운 목소리로 차분하고 정확하게 질문에 답했다. 우아하고 지적으로 미소 짓는 모습이 소녀처럼 맑고 밝았다.

△본인이 오페라 디바라면 어느 오페라를 가장 부르고 싶은가.

“난 벨칸토 오페라를 좋아한다. 벨리니의 ‘노르마’를 부르고 싶다.”

△이번 배역을 선택한 이유는.

“젠킨스는 노래가 엉망이었지만 희망과 기쁨을 지니고 불렀다. 그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도 목소리 안에 있는 이런 희망과, 오페라 가수가 되고자 하는 열망 덕분이었다. 내가 끌린 이유도 젠킨스의 이런 인간성 때문이었다. 잘하지 못하지만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사랑을 지닌 여자였다.”

△평소 젠킨스에 대해 알고 있었나.

“그렇다. 그녀는 내가 다닌 드라마학교의 학생들은 다 알고 있었을 만큼 유명했다. 모두들 그녀의 레코드를 돌려가며 들었고 카세트 테이프를 갖고 있었고 파티 때 틀곤 했다.”

△젠킨스는 죽을 때 “사람들은 날보고 노래를 못 부른다고 말했지만 내가 노래를 안 불렀다곤 말 못할 걸”이라고 했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는가.

“그것은 젠킨스가 진짜로 한 말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일을 일찍 찾아내 평생 직업으로 갖게 됐으니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번 영화에는 젠킨스와 위대한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매우 친한 사이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랬는가.

“젠킨스는 토스카니니의 카네기홀 지휘에 여러 번 후원을 했다. 늘 수표를 써 줬다. 예술에는 언제나 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젠킨스는 노래를 못 부른 사람인데 노래 못 부르는 연기를 어떻게 준비했나.

“진짜로 심각하게 준비했다. 내가 컨트리 가수로 나오는 영화 ‘릭키와 플래시’에서 공연한 가수 오드라 맥도널드에게 자문했더니 자기 음성 코치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그는 먼저 내게 아리아를 부를 수 있을 만큼 잘 부르라고 시킨 뒤 그 다음에는 영화를 찍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흉하게 부르라고 지도했다. 그 말을 따라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지금 세상은 온통 인종 대결과 테러로 긴장감이 가득한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짧은 시간에 답하기엔 너무나 심각한 물음이다. 물론 난 그 같은 일에 대해 무척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진 않는다. 사람들의 선을 믿기 때문이다. 난 낙천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칠순이 다 됐는데도 생명력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

“가까이 와서 보면 다르지. 매일 1마일씩 수영한다. 특별한 비법이 없다. 그저 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며 산다. 건강하면 참 운이 좋은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피부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젠 주름이 많다. 그걸 별로 괘념하진 않지만….”

△차기 미 대통령에 힐러리가 당선될 것으로 보는가.

“난 뉴욕 사람이다. 물론이다.”

△만났을 때 외경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누구?

“훌륭한 음악가와 미술가, 그리고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인들이다.”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도 배우가 되겠다는 사람을 보면 어떤 충고를 해 주겠는가.

“그를 낙망시키기보다는 ‘그래 한번 해 보라’고 조언하는 것이 좋겠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언제나 좋기 때문이다. 그러다 벽에 부딪치기도 하겠지만 상관없다. 나이 50이 되어 내가 노력해보지도 않았구나 하고 느끼기보다는 하다가 벽에 부딪치는 것이 낫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만족하는가 아니면 가혹하게 비평을 하는가.

“난 늘 참을성이 없어 촬영 준비가 오래 걸리는 걸 못 견딘다. 그리고 특수효과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 안 좋아한다. 내가 나온 영화를 보고는 ‘아이고 좀 더 준비를 할 것을’ 하며 후회할 때가 많다.”

△얼마 전에 ‘디어 헌터’(메릴 스트립이 처음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를 감독한 마이클 치미노가 사망했다.

“그 영화 출연은 정말 풍성한 경험이었다. 마이클은 내게 연기에 대해 많은 자유를 주었다. 난 조연에 지나지 않았고 영화를 조종한 사람들은 마이클과 로버트 드 니로,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몬드였다. 혹서에 촬영하느라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정말로 멋있는 경험이었다.”

△연기의 비법이 있다면.

“사전에 완벽한 준비를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맡은 역이 실제 인물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철저히 연구한다. 그리고 촬영 첫날에는 공연하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주는지 감지하려고 자신을 풀어 놓는다. 연기란 상호교환이기 때문이다. 연기란 이렇게 주고받는 것이어서 예측 불허다.”

△대사는 언제 어떻게 외우는가.

“옛날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분장실에 앉아 외웠는데 아주 쉬웠다. 그러나 이젠 촬영 전날 밤에 읽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숙독하고 분장실에 앉아 또 읽는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아들은 음악가이자 LA에서 학생들 방과 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딸 셋 중 둘은 배우로 세계 각국을 돌면서 일을 하는데 난 지금 그 아이들이 어느 대륙에 있는지도 모른다. 조각가인 남편은 모스크바의 미 대사관 신청사 앞에 조각작품을 설치할 예정이다. 내년 봄에 설치하는데 남편은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블로그:hjpark1230.blogspot.com

▲실제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70대에 카네기홀 데뷔한 ‘오페라가수’ 젠킨스

펜실베이니아 태생의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1868~1944)는 부유한 상속녀로 노래를 엉망으로 불렀는데도 오페라 아리아에 심취, 후에 이주한 뉴욕에서 자신이 조직한 ‘베르디 클럽’ 등 여러 모임에서 아리아를 즐겨 불렀다. 어릴 때는 피아노를 잘 쳤고 고교 졸업 후 음악공부를 계속하려 했으나 아버지가 말리자 홧김에 16세 연상인 의사 프랭크 젠킨스와 필라델피아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은 뒤 결혼했다. 젠킨스로부터 매독을 전염받고 평생을 고생했다.

32세 때 본격적으로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 두 번째 남편 영국인 세인트 클레어 베이필드를 매니저로 삼고 노래 수업에 들어갔다. 이어 살롱과 호텔 홀 등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는데 청중은 모두 지인들. 그녀의 꿈인 카네기홀 공연은 76세 때인 1944년 10월 25일에 이뤄진다. 첫 대중을 상대로 한 리사이틀로 콜 포터, 지안 칼로 메노티 및 릴리 폰스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그리고 언론의 혹평을 받았다. 젠킨스는 공연 후 이틀 만에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그로부터 한 달 후 사망했다. 그녀의 유일한 레코드는 베스트셀러 희귀품이다.

박흥진 영화 평론가,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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