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라몬 막사이사이(1907.8.31~1957.3.17)는 필리핀 개혁의 아버지다.” 양승윤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필리핀’이라는 저서에서 말했듯 막사이사이는 대통령 시절 토지 분배 등 필리핀의 고질적 문제에 메스를 가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루손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자동차운전사로 일하며 필리핀공대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 회사 모터풀에서 근무했다. 일본군이 필리핀을 침공하자 항일 게릴라에 들어가 종전 때는 사령관이 됐다. 이 업적으로 1950년 하원의원으로 선출돼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51년에는 엘피디도 키리노 당시 대통령에 의해 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국방부 장관이 된 후 그는 군 숙청과 공산 게릴라 후크단의 토벌에 주력했다. 그러나 1953년 키리노 정부가 공산주의에 대해 유화적인 정책을 택하자 장관을 그만두고 여당인 자유당에서도 탈당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국민당의 공천을 받아 대통령에 입후보했다. 그는 대선 유세에서 “내가 먹기 전에 국민이 먹어야 한다. 나의 아버지라 하더라도 법을 어기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말해 대중의 지지를 얻었고, 결국 키리노 대통령을 더블 스코아로 누르고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한 사람의 병사”로 자처하면서 토지 분배와 학교 건설을 강력히 추진했다. 아울러 “부정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충실히 지켰다. 이렇게 개혁정책으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1957년 세부섬의 대학에서 연설한 후 마닐라로 돌아오던 중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그의 유산이라곤 생명보험 증권 1매와 마닐라 교외에 있는 허름한 집 한 채뿐이었다. 그가 타계한 뒤 아시아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막사이사이상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