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와대 정책실장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되면 어떻게 될까? 즉 기업이 저축하고 가계가 이를 빌려 쓰는 상황이 되면 말이다. 기업이 투자를 멈춘 경제, 그래서 생산도 이윤도 일자리도 늘지 않는 경제, 이런 경제가 온전할 리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미국이 그랬다. 기업은 투자를 멈췄다. 2000년 초만 해도 S&P500 기업, 즉 신용평가사인 S&P가 주가지수 산정을 위해 선정한 500개 기업의 총 자산 중 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4~5%였다. 그러던 것이 이후 10% 이상으로 치솟았다.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고 돈을 쌓았다는 뜻이다.
반면 가계는 이 돈을 빌려 집을 샀다. 돈이 쌓여 있었으니 금리도 낮았다. 너도나도 집을 샀고, 그러자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번 김에 더 번다고 두 채 세 채 마구잡이로 사기도 했다. 금융기관도 거침없이 빌려줬다. 소위 ‘파생상품’이라는 금융기법들에 취해 떼여도 손해 볼 일이 없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갔겠는가? 집을 무한대로 점점 더 비싼 값에 사고팔 수는 없는 법, 어느 순간 집은 더는 팔리지 않게 됐다. 그러자 집값은 내려오고, 할부금과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계도 경제도 무너지고 말았다.
공연한 걱정일까? 세계가 다시 심상치 않다. 투자는 멈췄고 넘치는 돈은 다시 부동산을 향하고 있다. 중국 뉴질랜드 영국 등 여러 국가에서 부동산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10% 이상 오른 나라들이 적지 않다.
이런 흐름 속에 우리도 있다. 저금리에다 통화량은 매년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설비투자가 감소하는 등 투자는 오히려 내려앉고 있다. 갈 데 없는 돈이 결국 부동산, 특히 주택에 몰리고 있다. 2013년 1620만 원 하던 서울지역 아파트 평당 평균 매매가격은 지금 1850만 원이 되어 있다.
돈 있는 사람들만 뛰어드는 게 아니다. 오르는 집값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까지 빚을 내어가며 내 집 마련에 나서고 있다. 가계부채는 이미 1300조 원, 행여 집값이 내리거나 금리라도 오르면 이 빚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경제와 산업은 돈이 돌지 않아 죽고, 힘든 가계는 부채에 눌려 죽을 판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거나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문제이다. 높은 집값은 양극화 심화와 그로 말미암은 사회갈등의 양산, 임금 인상을 위한 노동투쟁의 격화, 주거복지 비용의 증가, 출산율 저하 등 수많은 문제를 낳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그 하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값을 잡는 것이다. 중국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줄이고 투기거래를 단속하고, 공급을 늘리는 등 전쟁을 선포하다시피 하고 있다.
또 하나는 돈이 흘러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돈의 흐름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은 경제와 산업구조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글로벌 경쟁의 시대이다. 어느 나라든 먼저 알고 먼저 고쳐 돈이 제대로 흐르게 하는 쪽이 이긴다. 경제와 산업 전반에 걸쳐 제대로 된 고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도, 경제와 산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읽을 수가 없다. 오히려 주택담보대출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등 집값을 올리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8월 25일 가계부채 대책을 내면서도 주택공급물량을 줄이겠다고 해 집값 상승을 자극하기도 했다.
무슨 의도인지 알 만하다. 성장률이 떨어질 때면 늘 해왔던 ‘짓’, 즉 부동산을 부추겨 성장률을 올리는 바로 그 ‘짓’을 하려는 거다. 하지 마라. 결국은 지속성장의 발목을 잡을 야비한 일이다.
오해라고?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라. 집값을 잡기 위한 실질적 조치와 돈이 제대로 흘러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모습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