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계열인 KDB생명이 정신질환을 이유로 자살한 가입자에게 약관상 지급해야 하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보험사가 약관상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는 ‘가입 2년 뒤 자살(2010년 표준약관 개정 이전)’과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이다. 전자 관련, 대법원은 오는 30일 소멸시효 인정 여부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가입자 A 씨는 1997년 본인을 피보험자, 아들을 수익자로 한 KDB생명‘(무)퍼펙트골드암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이 상품약관(제15조)은 당시 표준약관을 반영해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개정된 표준약관도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A 씨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딸의 생계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아오다 지난해 4월 본인이 다니던 교회 고층에서 투신자살했다.
A 씨 담당 의사는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상실로 자기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며 심한 공황증세로 순간왜곡이 올 수 있다”는 소견서를 남겼다.
유가족은 A 씨가 가입했던 KDB생명을 포함한 보험사 6곳(삼성생명ㆍ한화생명 등)에 재해사망보험금 청구를 했다. 나머지 보험사 5곳은 의사 소견에 따라 정신질환임을 인정해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KDB생명만 다른 보험사들이 모두 인정한 의사소견서를 믿을 수 없다며 아직까지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도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 KDB생명에 자살보험금 2000만 원 지급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자살보험금 지급 거부가 KDB생명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소비원이 접수(지난 1~8월)한 자살보험금 관련 피해구제신청(총 26건) 가운데 22건인 대다수가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이었다. ‘가입 2년 뒤 자살’은 4건에 그쳤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해당 민원 사례는 KDB생명이 타깃이 된 경우지만, 대형사를 포함한 다른 보험사들도 정신질환의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합의하는 방식으로 과소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준약관에 정신질환에 대한 구체적인 요건이 없는 것도 분쟁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어느 정도가 정신질환인지 약관에 명시돼 있지 않다 보니 보험사가 ‘정신질환이라 볼 수 없다’고 잡아떼면 그만인 셈”이라며 “보험사가 가입자의 고의자살을 입증할 수 없다면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