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충신 때론 간신…권력 정점에 선 이들
전제 왕조시대였던 조선조에도 왕조차 함부로 대하기 쉽지 않았던 서슬퍼런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때로는 충신으로, 때로는 간신으로 권력을 추구하면서 나름의 정상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건국, 창업, 욕망, 권력, 당쟁이라는 5가지 테마에 걸맞은 인물 10명을 심층적으로 다룬 이 책은 독자들에게 삶에 관한 풍성한 지혜와 처세술을 제시한다. 저자가 가계도를 낱낱이 파헤쳐 제시하기 때문에 얽히고설킨 인맥도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흠뻑 몰입하게 된다.
이 책의 특별한 강점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을 풍미했던 2인자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인맥’을 발견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왕에게 바른말을 한 것을 가문의 영광처럼 기록해놓은 많은 인물들이 사실 왕실과 얼마나 긴밀한 친인척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마치 금광을 찾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초기의 조선은 명나라 법전 및 역사서인 대명회통의 조선왕조 계보에 이성계의 부친이 이인임으로 기록돼 있어 고민했다. 창건자의 아버지가 엉뚱한 이름으로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었으니 얼마나 딱한 노릇이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조선 건국으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1584년(선조 17년)이다. 조선과 중국 사이의 관계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이인임은 어떤 인물일까? 이인임은 이성계와 정치적으로 대립했지만 사적으로는 사돈 관계였다. 이성계가 경처 강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이인임의 조카와 결혼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에게 불만을 품었던 윤이와 이초 등 권문세족 출신들은 명나라에 망명해 주원장에게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므로 그를 토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주원장이 친원파였던 이인임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중국에 달려가서 “저 친구를 혼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방원에게 목숨을 빼앗긴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조선조 내내 가혹했다. 정도전을 탐구한 작가는 정도전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데 거침없는 과격한 행보를 보인 인물’로 묘사한다. 그는 이성계로 하여금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를 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작 자신은 재상 중심의 신권정치를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무엇이든 제거할 수 있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역사는 승자에 의해 얼마든지 각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정 인물을 깊이 파고든 작가의 도움으로 우리는 친숙한 인물들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