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땐 벤처기업으로 성장 견인…반도체 혁명, IT버블 시기 증시 지탱…이젠 플랫폼 혁신 ‘제2 카카오’ 기대
신기술 개발과 대중화는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경제가 탄력을 받자 증시 상승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하곤 했다. 1990년대 말에 퍼스널컴퓨터(PC)와 휴대폰 대중화 등 첨단 기기 도입과 이를 통한 인터넷 확산 등 정보화 사회로의 도약은 과거 산업혁명과 비견되는 혁신을 가져오며 증시의 비약적 상승세를 이끌었다.
1990년대 코스피는 경상수지 흑자와 정보기술(IT)투자 활성화 등으로 1994년과 1999년 두 차례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이 가운데 1999년의 경우는 IT로 대표되는 최첨단 기술 발전에 힘입었다.
한국 경제는 1994년 9월 두 번째로 1000포인트를 돌파한 이후 19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전후로 외환위기 시대를 맞았다. 1998년 6월 16일 주가는 금융시장 개방 이후 최저 수준인 280.00포인트까지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9년 5월 25일 국내증시를 완전히 개방하고 IT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비증대로 이어지는 등 반환점을 맞이했다. 증시도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기말인 1999년 정보통신분야는 이동전화와 인터넷 대중화, 벤처기업 활성화 등으로 분주한 해였다. 정보화 기술이 국내 경제와 주식시장에서 성장잠재력을 과시하며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인터넷 보급을 통한 대중화 역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정부도 세계 최초로 개인을 대상으로 도메인(인터넷주소)을 허용하는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섰다. 더 빠르고 원활한 인터넷 이용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민간 영역에서는 하나로통신과 두루넷, 한국통신에 이어 드림라인, 데이콤, SK텔레콤 등 업체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국내 인터넷 이용인구는 1998년말 310만 명에서 이듬해 말에는 700만 명에 이르렀다.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은 ‘디지털혁명’이라고 불릴 만큼의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범 세계적 기술주 투자확산과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 등에 힘입어 이른바 IT호황이 시작됐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에 기반한 벤처기업이 대거 등장해 투자자금을 끌어모았다. 1999년 7월 7일 증시는 세 번째로 1000포인트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2002년에는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현 KT 회장)의 이른바 ‘황의 법칙’이 등장했다. 반도체 메모리 집적도 증가는 ‘반도체 혁명’이라 불리며 새로운 혁신으로 받아드려졌다. 인터넷 네트워크 속도를 향상시켰고 전 세계 모바일 시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면서 IT버블 붕괴로 하락하는 증시를 지탱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테크놀로지 이노베이션이 증시에 새로운 성장 모멘텀으로 ‘그로스 밸류(Growth Value)’ 값을 크게 올린다”며 “이를 통해 한 단계 박스권을 돌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은 2000년대 초중반에 제조업 중심에서 보안, 통신 등 IT 분야의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밸류가 모멘텀이 되면서 증시가 박스권을 돌파했다”며 “최근 2~3년에는 SNS 등 플랫폼 혁신이었다. 전세계적 현상이지만 독점력이 뛰어난 곳만 살아남고 있다. 한국은 네이버나 카카오가 독점적 경쟁력을 갖췄는데 제2의 네이버나 카카오가 나와야 증시는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